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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선 Nov 07. 2020

테라오 겐 <가자, 어디에도 없었던 방법으로> (1)

첫눈 - 나의 어린시절

2019년 5월 28일 씀

 이런 책인지 몰랐다. 콧대 높은 가격에 세련된 외양을 자랑하는 발뮤다의, 고도로 섬세한 경영 기법이 담긴 책일거라 짐작했었다. 제목에서도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드는걸.
 하지만 테라오 겐이 이런 사람일 줄은 더더욱 몰랐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여의고, 고등학교를 자퇴해버리고, 나홀로의 동양인 꼬맹이로 훌쩍 세계 여행을 떠나고, 락스타로 무대를 누비던 사람이란 걸.

 특히 전반부에 해당하는 챕터 1은 가장 큰 비중으로 이 책의 두께를 구성하고 있다. 분량에 압도적인 차이를 두어 어린 시절을 담아낸 것이 마음에 든다. 어린 시절에 보고 느낀 것들이 전체 삶에서 가장 중대한 영향력을 가졌음을 시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의 하나로서 퍽 반가웠다.

 /

 테라오 겐은 현실적인 아버지와 이상적인 어머니 밑에서 자라났다. 그 덕택에 쾌활한 어머니의 주도로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이곳 저곳을 여행할 수 있었고, 책임감 강한 아버지의 헌신으로 착실하게 살을 찌우며ㅡ성심껏 그림책을 읽어주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목소리 아래서 잠들 수 있었다.

 그가 어린 시절에 느꼈던 행복은, 나의 그것들과 닮은 점이 많아서 아주 기분 좋은 감상에 잠겨 읽게 되었다.
  
 (발췌) 그림책 속에는 말도 있고, 이야기도 있고, 아름다운 그림도 있다. 기초적인 어휘를 비롯해 시적인 표현을 익힐 수 있다. 그림책 속에 펼쳐지던 다양한 세계관은 한창 자라던 나와 동생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도깨비나 악마, 영웅 또는 바보들, 깊은 숲 속과 바다 밑, 하늘을 나는 배, 죄다 비현실적인 이야기지만, ‘이 세상은 대체 얼마나 넓은거야?’ 하고 감탄하며 공상의 나라, 미래를 향한 생각을 키워갔다. 아직 본 적 없는 멋진 장소가 있다. 그런 세계가 어딘가에 꼭 있을 거라고 믿었다.
 
 어릴 적 나는 삼시세끼를 배불리 먹을 수 있었으나, 자장면은 아주 드물게 그것도 탕수육까지는 더욱 드물게 먹을 수 있었다. 유복하지 않은 환경에 대해 불만은 전혀 없었다. 부모님은 자기들이 겪은 어린 시절과는 다른, 그런 어린 시절을 나와 형제들에게 만들어주기 위해 쉬지않고 노력하셨고 나는 그걸 알았다.

 엄마아빠에게 아쉬운 것은 못 먹었던 초콜릿이 아니라 못 읽었던 책이었다. 그래서 그 분들은 찬장보다 책장을 채우는 걸 선택하셨고 덕택에 지금의 내가 있다. 과자 한 봉지엔 인색했지만 책 열 권에는 너그러우셨던 그 마음 덕분에.

 세계명작동화, 세계위인전집, 한국위인전집, 한국사전집 같은 한 질짜리 책들로 빡빡하게 채워진 책장에서 책을 꺼내려면 윗부분을 손가락으로 눌러잡고 꽤나 힘을 들여 빼내야했다. 그 책이 난 자리에 생긴 검은 틈은 언제나 신비로운 모험의 입구가 됐다.

 꿈을 꿀 때면 난 용감한 전사가 되어 거대한 콘도르의 알을 훔치거나, 색색의 보석이 알알이 박힌 오솔길을 맨발로 걸으며 노래했다. 시련 속에서도 변함없이 빛나던, 소녀의 상냥한 마음씨가 알고보니 고귀한 혈통의 증거였다든가ㅡ 희생을 무릅쓰고 남을 도운 소년이 먼 후일에 그 보답으로 금은보화를 얻게 된다든가ㅡ 하는 이야기들이 도덕과 윤리를 배우기 훨씬 전에 이미 내 마음에다 착하게 살아가야할 이유를 꼭꼭 심어주었다.

 (발췌) 어머니는 한동안 막혀 있던 문제를 풀어내기라도 하면 손을 크게 흔들거나 가끔은 악수를 청하며 소리 높여 칭찬했다. 또 공부에 지겨운 내색을 보이면 “집중!”하고 구호를 외쳤다. “한 번 성공해보면, 다음에도 반드시 성공할거야!” 이건 어머니가 자주 하던 말인데, 지금도 나 자신에게 반복해서 들려주는 말이다.

 작은 성공의 경험들은 큰 성공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 특히 성공을 위한 노력이 고되었을수록, 그 다음 성공의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크고 작은 실패들을, 성공을 향한 여정으로ㅡ그를 위한 도움닫기로ㅡ 여길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이러한 교수법이, 테라오 겐이 다양한 실패들을 겪고도 그에 허우적거리지 않고 다시 일어나 뛰게한 원동력이 되었을 거라 확신한다.

 (발췌) 가난해서 즐거운 일도 있지만, 괴로운 일도 있다. 시시각각 머리를 쓰며 요령껏 살아야 하고, 셀 수 없는 슬픔도 공존한다. 아버지는 어떡하든 일을 해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려고 했다. 반면 어머니는 삶을 즐기는 데 주력했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이 마음먹은 것은 해내고야 마는 실행력도 있었다.

 가난으로 인한 슬픔은 일반적인 슬픔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응축된 감정 뿐 아니라 그 위로 허탈한 절망이 또 한겹 드리워진, 그런 눈물이라고 해야할까? 그러나 어린이가 느끼는 것과, 그 어린이를 돌보고 있는 어른이 느끼는 눈물의 농도는 완전히 다를 것으로 생각된다. 일찍 철드는 것보다, 그렇게 철든 아이를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일이야말로 마음 아픈 일일 것이다.
 때문에 나는 현실과 동떨어져 즐거운 여행으로 테라오 겐을 이끈 그의 어머니에게 매료되면서도ㅡ 어쩌면 어머니와 테라오 겐 몫의 눈물을 홀로 모아 삼켜야했을지 모를 아버지를 생각하며 마음이 무겁기도 했다.

 (발췌) 당시 우리 집은 다른 집에 비해 수입이 적은 편이었는데도 생활의 부족함을 느낀 적이 없다. 오히려 정신적으로 풍요롭고, 건강하게 자랐다. 집터가 넓었던 것도 한몫했던 것 같다. 비닐하우스가 서 있던 곳에 남아 있던 골조까지 모두 철거하자 허허벌판이 됐다. 나와 동생은 그 벌판을 시작으로 집 주변의 산과 들을 운동장 삼아 마음껏 뛰어놀았다.

 (발췌) 꽤 가난했고, 어머니가 없는 작은 집인데도 우리집은 늘 따뜻했다. 그리고 지금 그때를 떠올려보면 부유함과 즐거움이 꼭 비례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나는 지난날을 미화하고 있는 걸까?

 어릴 적에 했던 우스꽝스러운 놀이들 중에 기억에 남는건ㅡ산에서 새끼 손톱보다도 작은 화약들을 하나둘 주워서 한 줌 모은 뒤, 마당에다가 소용돌이나 별 모양으로 가지런히 늘어놓는 것이었다. 그 다음 아빠에게 불을 붙여달라고 부탁하면, 작은 불꽃이 도미노처럼 모양을 따라 쏜살같이 달려간 뒤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냇가에 가서 무거운 돌을 엎다가 거머리를 보고 울면서 도망가거나, 아카시아 잎을 손으로 훑어 동그란 잎을 한 주먹 모은 뒤 공중에 던지며 환호하거나, 애기똥풀의 꽃망울을 한 겹 한 겹 벗겨보이며 친구에게 어린 바나나라고 장난치거나, 호주머니에 담아온 도토리에 아빠와 함께 철사를 구부려 꽂아 사람 모양을 만들어보거나... 엄마가 저녁할 거니까 밭에서 호박을 하나 따오라고 시키시면, 벌을 피해 노란 꽃과 큰 잎사귀 아래 동그랗게 웃고 있는 걸 두 손으로 따가지고 와서 드렸고 그게 곧장 밥상 위에 올랐다. 내 어린 시절은 봄처럼 따사롭고 가을처럼 풍요로웠다. 어릴 적 우리 집엔 새 것이 별로 없었지만 나는 물건들에 파인 홈과 손때로 반질반질해진 자리를 어루만지며 그것들에 담긴, 때로는 나보다도 오래된 역사를 생각했다.

 우리 가족은 내가 19살이 되던 해, 그림 같이 예쁜 2층짜리 주택을 새로 짓고 그리로 이사했다. 그 낡은 집엔 이제 다른 사람들이 살고, 그들은 집을 수리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귀신이 나오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것이, 그 집에선 꽤 합리적인 공포였다. 나 역시 테라오 겐처럼 지난날을 미화하고 있는 걸까?

 하지만 그 집에서 자라지 못했다면 지금 전연 다른 모양의 인간이 되어있을 지도 모른다고 자주 생각한다. 몇 안 되는, 맘에 드는 내 글 중에 19살 때 그 집에 대해 썼던 글이 있다. 불두화와 수국을 구분할 줄 몰랐던 시절에 쓴 것인데, 알고 나서도 수정하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두고 싶어서. 그리고 19살의 나도 그 집에서 자라서 좋았다고 했다. 지금은, 따뜻하고도 별난 추억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그저 행복할 따름이다.

 (발췌)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 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작업을 하며 매일매일 새로운 발견을 하고, 스스로 만들어낸 작품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반 년쯤 지난 뒤에는 동네 그릇 가게에 찻잔이나 밥그릇 등을 납품할 정도의 실력을 쌓았다.
 그 때 봤던 아버지의 모습, 사람이 진심을 다해 어떤 일에 전념할 때 뿜어내는 기운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던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사람이 진심을 다해 어떤 일에 전념할 때 뿜어내는 기운! 이건 정말 상상만 해도 두근두근 가슴 설렌다.
 
 그게 뭣이든!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벅차올라 눈이 반짝거리고 순간 말문이 막히는 그런- 경외와 애정의 대상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까지도 덩달아 두 손을 모으고 그러한 감격에 동화되어 행복해지고, 이내 푹 빠져버리고 만다.

 그들 곁에 있다보면 나 역시도 노력에 드는 수고를 아끼지 않게 되고, 그 순수로 꽉 들어찬 열정이 물씬 물씬 묻어나는 지식과 지혜들을 스펀지처럼 쭉쭉 흡수하게 된다. 그건 내 눈 앞에다가, 마음을 담아 닦고 가꾸어 윤이 나는 보물 상자를 꺼내어 보여주는 것과 같다. 안에 든 내용물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아주 귀하고 값진 것들이다.

 얼마 전 깨끗이 청소하고 소독하는 걸 좋아하는 육아 웹툰 작가가, 독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아예 한 회차를 청소 얘기로만 채운 걸 봤다. 나는 그걸 보고 배워, 이제 남은 콜라를 곧장 버리지 않고 가스레인지를 닦는 데에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보다 좋았던 것은 그 단순한 그림체 너머로 작가의 잔뜩 신난 얼굴을 마주하는 것이었다. 모르는 얼굴을, 하지만 웃고 있는 얼굴을.

(발췌) 기온이 떨어지면서 대기가 맑게 트이고, 태양이 뿜어내는 강한 빛이 하와이로 떨어졌다.그 빛이 태양 표면에서 우주 공간을 지나 8분쯤 지난 뒤에는 지구에 도착할 터였다. 높은 하늘 위에서 이 광경을 볼 수 있다면, 우주 저편에서 날아온 빛이 파란 바다 위에 떠오른 축복의 섬들 위로 쏟아지고 있는 듯 보였을 것이다.
 수십 년이 지나도 그때의 감정을 잊을 수가 없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한 사람의 죽음에 나는 주체할 수 없이 슬픈데 세상은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그 아름다움에 대해, 그때 느낀 위화감에 대해, 나는 지금까지 몇 번이고 곱씹어보고나서야 겨우 알았다. 슬플 땐 마음껏 슬퍼하면 된다. 그렇다고 그 슬픔이나 괴로움을 다른 사람이 알아주길 바라서는 안 된다. 그건 이기적인 생각이다.
 나와 내 가족에게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슬프고 괴롭다고 해서 세상이 나를 위해 슬퍼할 이유는 없다. 우리 가족이 깊은 슬픔에 빠져 있는 동안 세상이 암흑으로 변하는 일도 없었다. 우리의 슬픔이 이 세상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암흑으로 변하는 일은 없었다지만, 오히려 내게는... 저 아름다운 문학적 표현으로 인해, 숨막힐 듯이 장엄한 풍경 위를 겹겹이 감싸는 어린 테라오 겐의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나는 그 애를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 어린 애가 또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밀어낼 거란 것도 같이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나는, 이제는 시간의 뒤꼍으로 사라지고 없는 저 슬픈 어린 애에게ㅡ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고등학생에게ㅡ핑계 삼아 엉엉 울라고 들려주고픈 노래로, 가수 짙은의 ‘첫눈’을 떠올렸다. 그리곤 도리어 음악에 잠겨 내가 울고 말았다.

 (발췌) 청춘시대, 많은 사람들이 자의식 과잉 상태로 그 시기를 보낸다. 나 또한 그랬다. 아니, 일반적인 수치를 훨씬 뛰어넘었지 싶다.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기만 하면 뭐든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그건 살아갈 수 있다는 자신이 아니었다. 그 다음 단계의 것, 자만에 빠지고 말았다.

 그 시절에 외국어도 못하는 열일곱살 동양인 남자애가 1년간 해외 여행을 하고 있었다면, 자만을 차곡차곡 채워올리는 것이 영 이해 못할 일도 아닐 듯 싶다.
 자만과 허영심의 차이에 관한 문장을 읽은 적이 있다. 자만은 자기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허영은 남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관계 있다는. 사실 자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열등감이란 천적을 부지런히 잡아눌러야 하므로, 끊임없는 노력의 시발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 자만이 스스로를 천재라고 여기는 데서 온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노력은 평범한 사람이나 하는 거니까. 뮤지션 테라오 겐이 우월감 너머로 그토록 초조함을 느꼈던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의 천재성에 상처를 내가며 절박하게 노력했던 일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얼마나 큰 굴욕감을 맛보았을 지는 상상만으로도 괴롭다.

 자, 이제 테라오 겐이 나는 천재가 아닐지도 모른다고 흔들리고, 설상가상으로 처절한 실패까지 맛보았으니 다음엔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발뮤다의 하얗고 예쁜 전자제품들과는 도무지 아무런 연관성도 없어보이는 이 호기로운 젊은이의 이야기가, 도대체 어떻게 해서 그 쪽으로 흘러가게 되는걸까? 오른손에 잡히는 나머지 반절의 페이지들을 어서 읽고 싶어 못 견디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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