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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영선 Oct 28. 2020

추적단 불꽃 <우리가 우리를 - 우리라고 부를 때>

외면하지 않은 용감한 사람들

 사르트르가 말했던 바로 그 참된 '지식인'을 만났다. 추적단 불꽃의, 불과 단. 이 두 사람은 기자를 지망하는 대학생으로, 탐사 보도 공모전에 함께 나가보는 게 어떻겠냐는 교수님의 제안을 계기로 가까워졌다. ‘불법촬영’을 아이템으로 잡은 두 사람은, ‘쉽게’ n번방을 발견하고, 이를 ‘어렵게’ 공론화하는 데 성공한다. 쉼표 하나 마침표 하나 짜리의 이 문장을 위해, 그들이 발휘한 용기와 끈기는 자못 경외감을 느끼게 될 정도다.

 두 사람의 에세이가 담긴 2장이 좋았다. 특히 좋았던 부분은, 돌연 숏컷을 하고 화장을 않게 된 단이, 펑펑 울며 사실 오래 만난 남자친구가 있다고 불에게 고백하는 장면. 그녀가 남자친구의 존재를 숨긴 이유는ㅡ 어쩐지 진정한 페미니스트라면 응당 홀로 당당해야만 할 것 같아서, 또 ‘이별’ 대신 ‘연애 탈출’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그 사회에서 배신자로 낙인 찍힐 것만 같아 두려워서였다. 보는 사람에 따라서 우스꽝스러울지 몰라도, 내 눈에는 그 속앓이가 더없이 현실적으로 보였다.

 개인적으로 신념에 대해 아래 3가지의 단계를 설정하고 있다. 여기서 신념이란 것은, 어떤 개인이 깊숙이 내재화하여 그의 실제적 삶에까지 영향을 주는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겠다.

1.  신념을 갖지 않고 살아가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경우에 따라 다수의 의견에 짐짓 동조하는 듯이 굴며 갈등을 피하고, 그러면서도 묘한 표정을 한 채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단 태도로 합리화할 수도 있다. 경우에 따라 그것은 도리어 합리적인 자세가 될 수도 있다.

2. 신념을 갖기란 사실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이 세상엔 마땅히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촉구로 맺어지는 온갖 선동과 호도가 넘쳐난다. 강력한 신념은 그 형성 과정에서 자연히, 그에 걸맞은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규정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인간은 본래 스스로 선이라고 믿는 일을 행할 때에는 악조차도 거리낌없이 범할 수 있는 존재로, 하물며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마냥 전력 질주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3.  그러나 나의 신념이 수정될 수 있다는 용기를 지니고 사는 것은 쉽지 않다. 수정 자체가 아니라, 수정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 것. 여기엔 지난 날의 자신을 엄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자기 객관화와, 인간사를 오차없이 재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자세도 부분적으로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신념을 추구하는 것이 어째서 의미있는가에 답할 줄도 알아야한다.

 나는 이 3가지의 단계가 순차적으로 진행된다고 생각한다. 2에서 3으로 가지 않는 경우도 많으나, 2를 거치지 않고서는 3으로 갈 수 없다고 본다. 어쩌면 단은 2의 사람들 사이에서 혼란을 겪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남성은 물론이고, 여성들마저도 페미니즘에 손사레를 치게 만드는 일들 역시 아마도 2에 해당하는 사례들일 것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명백한 범죄인 n번방 사건을, 합법과 불법이 아닌 가치 판단의 영역에 두고 싶지는 않으므로, 페미니즘에 대한 내 생각은 여기서는 미루어두기로 한다.)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지식인의 고독을 말했다.

(발췌) ‘그는 다른 사람들 또한 함께 해방되지 않으면 그 자신도 해방될 수가 없습니다.’
(발췌) ‘자기 고유의 모순이 결국에는 객관적인 모순의 특이한 표현임을 깨닫게 된 지식인은 이러한 모순에 맞서서 자기 자신과 타인을 위해 싸우는 모든 사람과 연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에세이 형식인 2장에는 불과 단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크고 작은 사건들에 대한 소회도 담겨있다. 알바 중 오피스 와이프를 운운하던 젖먹이 아빠 사장, 팔뚝을 주무르던 학교 선생님, 노래방에서 ‘얘 귀엽지 않냐?’ 하는 교수님 때문에 학우들 모두 바짝 긴장했던 일, 숏컷을 보더니 남자같다고 머리 기르라고 대놓고 무안을 주던 선배. 이런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과연 낯설어 보일까?

 자신의 영상이 언제 올라갈까 노심초사하며 n번방에 몰래 접속해있던 어느 피해 여성은, 누구의 영상을 보고 싶냐는 n번방 내부 투표에서 2등을 하고 안도하는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꼈다고 한다. 1등을 한 사람의 얼굴이 자기보다도 훨씬 어려보였기 때문이었다.
 
 n번방을 조사하면서, 둘은 유독 피해가 심각한 여성들을 수소문하여 피해 사실을 조심스레 알리기도 했다. (타인이 신고하는 것과 본인이 신고하는 것 사이 형량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한다.) 피해 사실 자체를 몰랐던 사람도 있었다. 자신은 비공개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므로 퍼갈 만한 사람은 지인 뿐이라며 당황해하던 어느 피해자는, 공개 범위를 좁혀 사진을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결국 범인을 잡아내는 데 성공하는데, 그는 바로 중학교 동창이었다. 불과 단은 n번방 조사 도중 실제로 지인이 그 방에 접속한 것을 목격하기도 한다.

 그들은 n번방 사건을 공론화하고 사회의 변화를 이끌어낸 데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어쩌면 이 사람도 n번방에 접속하는 사람일지 모른다는 망상 장애에 시달리고, 악착같이 수집했던 피해 영상들의 잔상에서 비롯한 괴로움으로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던 시절에도, 밀려드는 인터뷰 요청에 끼니를 챙기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서도, 자랑스러워하시면서도 위험을 걱정하고 만류하시는 부모님 앞에서도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그게 바로 나’라는 마음으로 버텼다.

 그저 취업 준비생이었다. 스펙에 한 줄을 추가하고 학자금 상환을 할 목적으로, 상금이 높은 공모전에 참가하려던 것이었다. n번방 사건 인터뷰를 하러다니면서도 그들은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토록 평범한 대학생 두 사람이, 이토록 거대한 수렁을 세상에 드러나도록 했다는 것이 놀라우면서 또 한편 스스로를 반성케 한다. 수렁을 보고도, 내 발이 빠진 게 아니라면 외면하면 그만이다. 두 사람도 끔찍한 피해 영상들을 보며 수차례나 노트북을 그대로 덮어버리고 싶었다고 한다. 내가 흘끗 지나친 것들은 얼마나 될까, 더 비겁하게, 부러 흐린 눈을 했던 것들은 또 얼마나 될까.

 지난 주 퇴근길 지하철에서, 에어팟을 귀에 꽂고 책 <수용소군도>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내 왼쪽 옆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자분이, 우리 사이 앉은 사람을 거쳐 팔을 쭉 뻗어 내게 자기 핸드폰을 보여줬다. 나는 놀라서 그 분 얼굴을 한번 보고선 화면을 봤는데, 카카오톡 내게 쓰기 화면에 나한테 무언가 알려주려고 쓴 메시지가 있었다. 어쩌면 그 사람에게는 그게 지나치기엔 마음이 쓰이는 웅덩이 같은 거였을까? 내릴 때 목례하고 감사하다고 말씀도 드렸지만, 애초에 나는 책 읽느라 까맣게 몰랐던 걸 그 사람은 발견하고 내게 굳이 노력해서 알려준 것이 신기하고 놀라웠다.

 지금도 추적단 불꽃은 조사를 진행 중이다. n번방보다도 더 교묘하고 지능적인 수법으로 이뤄지고 있는, 또다른 디지털 성범죄를. 불꽃은 다만, 사회의 관심을 바란다. 웰컴투비디오의 손정우가 미국 송환을 면했다는 것은 기사로 접해 알았지만, 그가 판결 전 혼인 신고를 한 일이 양형 사유로 활용되고, 판결 이후 상대방이 혼인 무효 소송을 해 도로 미혼이 되었다는 것은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범죄의 고리를 끊는 일은, 가해자의 검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형량을 선고받는 데까지로 이어져야 한다. 나도 좀더 눈을 또렷이 뜨고 살피려 한다. 그 수렁이 잘 메워지는가를, 그들의 다음 취재를, 또 내 주변에 이런 저런 웅덩이들이 없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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