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홉살 때 쓴 글
2008년 씀
- 내가 각별히 아끼는 글
겁쟁이고 바보같고 애 같은 건
언제쯤 살살 흔들릴까
아빠한테 실로 묶어 이마 탁 치고 뽑아달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나서 나 전에 살던 집 우물가 디딤돌 위에 서서
지붕 위로 던지는거야
까치야 하고 부른 다음에
헌 이 줄게 새 이 다오 말고 그럼 뭐라고 말해야되지
옛날 집은 새로운 탐험이 가득했는데
뒤뜰엔 대추나무 돌배나무 사과나무 고야나무 밤나무 앵두나무
그 때는 이름들을 절반도 몰랐던 예쁘고 알록달록한 꽃들
단연 으뜸은 엄청나게 큰 밤나무
밤송이에 찔려 으익 하면서도 신발로 꾹꾹 밟은 뒤에
살살살 발을 양쪽으로 벌려 밤송이를 스르륵 열면
굵고 단단한 알밤이 그득하게 들어차있었는데
생밤이 먹고 싶으면 그 자리에서 이로 겉껍질에 상처내고
슥슥 벗겨낸 뒤에 속껍질(우리집 밤나무는 좀 특이한 품종이라
속껍질이 그냥 뚝뚝 떨어져서 먹기 좋았음)도 없애고
입 안에 쏙 넣어 오독오독 씹어먹고
아니면 주머니에 넣거나 작은 손에 꼭 쥐고
광을 열어 밤 광주리 속에 두는거야
가을이 깊어지고 하늘이 더 새파래지면
잠자리들이 겉잡을 수 없이 많아져서 끔쩍 끔쩍 놀라게 되면
커다란 광주리는 테니스공보단 작고 골프공보다는 큰
반짝 반짝 윤이 나서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밤들로 가득 채워지고
그러면 걔네는 송편 속에 밥 속에 약식 속에서 먹히고
나머지는 단체로 푹 쪄진 채 늦가을이랑 겨울
우리 식구 뱃속으로 가 없어지지
아련하고 소중하고 따뜻한 추억들
나 18살 때까지 살았던 그 집은
엄청 낡아서 때론 으시시했었지만
그래도 그 때 그 집에서 살아서 좋았어
대문 앞에는 길다랗고 큰 돌이 놓여있었어
그 위에는 수국이 있었고
그 옆에 담을 따라 개나리가 있었고
그래서 난 수국을 참 좋아해
왜냐하면 그 돌 위에 앉아 수국 아래서 책을 읽었거든
햇빛 아래서 책을 읽다가 집에 들어오면
갑자기 왠지 모르게 엄청 깜깜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어
가끔 바람이 불어
그 자체로도 하나의 꽃인 수국 꽃잎이 하나 둘씩 날릴 때면
마치 눈이 내리는 것처럼 아름답고 꿈결같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