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는 결국 스스로를 파괴합니다.
최근 환경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세계 곳곳의 환경보호단체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이처럼 자연을 향한 인간의 원초적 동경의 목소리는, 현상황이 지속될 경우 현재와 같은 평범한 삶이 유지되지 않을 것이란 위기의식을 심어주었으며, 곧 이에 감응한 사람들은 환경을 보호할 수 있는 실천가능한 태도를 모색하게 되었다. 그 결과 낭비하지 않는 삶, 이른바 '제로 웨이스트 (Zero Waste)', 조깅과 환경미화를 결합한 '플로깅(Plogging)' 등, 행동하는 자연보호가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떠올랐고, SNS를 통해 빠르게 퍼져나가며 양심 있는 라이프스타일로 각광받고 있는 요즘이다. 이처럼 선한 관심을 끌며, 타인에게 무해한 환경보호 운동은 그 실효 여부를 떠나, 지구의 구성원으로서 환경을 보호하고자 선언하는 태도로 성립될 수 있다.
오늘도 친환경적인 삶을 실천하고 계시는 분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해외의 몇몇 과격한 환경단체들이 자신들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맥락 없이 미술품을 파괴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고 있다. 특히 그중 눈에 띄는 대활약(?)을 펼치는 단체 'Just Stop Oil'이 선보이는 변질된 분노의 파도는 브레이크를 잡을 줄 모른다.
너도 나도 말하기 바쁜 사회, 이른바 과잉 정보의 시대에서 자신의 뜻을 전하기 위한 '어그로'는 때때로 능력으로 발휘되기도 한다. 마케팅이 곧 '어그로' 아니겠는가. 그러니 이 환경단체도 나름대로 자신들의 취지를 알리기 위해 미술품 테러 방식으로 어그로를 끌며 자신들의 메시지를 알린 것이다.
이슈가 발생한 미술품 테러 사건은 최근 한 달 사이에 보도된 건만 5건이 넘는다.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고야의 <옷을 입은 (+벗은) 마하>, 존 컨스터블의 <hay wain> 등 모두 세계 주요 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국보급 작품이다.
그들이 직접 밝힌 과격한 행동의 이유는 아래와 같다.
"당신의 눈앞에서 분명히 파괴되고 있는 아름다운 미술품을 볼 때, 당신은 어떤 감정을 느끼는가?"
"분노를 느끼는가? 지구가 파괴될 때도 분노를 느꼈는가?"
"이 행위는 예술의 아름다움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우선순위가 엉망이 되었음을 알리는 방법이다"
"자연을 묘사하는 예술 고유의 아름다움을 찾으면서 우리는 현재의 자연이 파괴되는 모습을 무시하고 있다"
어디까지 납득할만한 주장일 수 있다. 아니 일리 있다. 예술은 본디 무용한 것이고 창조적 소비와 파괴를 동반하는 작업행위이다. 그러니 자연보호와는 거리가 있는 분야로 바라볼 수 있고, 대중들의 경종을 울리기 위한 대상으로서 예술품 파괴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Just Stop Oil'이 고려해야 할 것은 예술 작품은 인류의 시간이 담긴 공공 재산이라는 점이다. 분노로 가득 찬 관심 끌기는, 이기적인 자아 충족 외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살펴보아야 한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그들이 선택한 분노로 점철된 파괴적 행동은 빨리 갈 수 있으나, 멀리 가기 위한 선택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자신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환경보호에 더 가깝게 다가가려면 지치지 않고 더 멀리 바라보는 관점이 필요하다. 미술계는 환경계가 다가서서 파괴해야 할 대상이 아닌,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야 하는 파트너로 바라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