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 뜨거운 체스광

신의 한수를 둘 때 까지

by 서대문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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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에 빠진 게 아니라니 다행이다. 변기 하나로 세상을 뒤집은 예술가, 마르셀 뒤샹은 '체스광'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체스 때문에 예술을 포기했다’라고 평가할 정도로 체스에 중독된 삶을 살았는데, 이는 그의 집안 전체가 체스를 즐겨하던 분위기도 한 몫했다. 어린 시절 형들이 체스를 두는 풍경을 그린 <체스게임>이란 작품도 있다.


뒤샹은 예술가로서 유명세를 타던 시기에도, "영광과 돈을 구걸하는 예술가로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라며 모든 개인전 제의를 뿌리쳤으나, 자신이 몰두하던 체스에는 언제나 진심이었다. 예술을 멀리하더니 곧 체스 클럽의 회원이 되었고, 공식일정을 마치면 늘 체스 클럽으로 향했으며, 지속적으로 체스 경연대회에 참가하다가 결국 1923년에 그는 체스를 두기 위해 예술 작품 발표를 포기한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Marcel-duchamp-chess-game.Jpg 마르셀 뒤샹 - 체스게임, 1910 / 그는 이 작품 외에도 체스와 관련된 여러 작품을 남겼다.


사실 뒤샹이 이토록 체스에 몰입하는 까닭은 자신과 체스 사이에서 ‘사회적 유용성’의 부재를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더군다나 주류 미술계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던 그는, 자신이 미술계 상류층에 염증을 느껴 즐겁게 상대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체스에 몰두했을지도 모른다.


5221933680_91bbffddb9_b.jpg 1963년 LA, 파사데나 뮤지엄 / 누드모델 에바 바비츠(Eve Babitz)와 함께.

예술계에 은퇴를 선언하고 한참 뒤인 1963년, 마르셀 뒤샹은 LA 인근의 파사데나 뮤지엄에서 열린 자신의 개인전에서 누드모델 에바 바비츠(Eve Babitz)와 함께 낯 뜨거운(?) 퍼포먼스를 준비한다. 사실 사진이 공개되었던 1960년의 시대 상황을 살펴보면 마냥 이상하지만은 않다. 당시는 질서에 불응하는 아방가르드와 히피 문화가 꽃피웠던 시대였으니까. 오히려 이 퍼포먼스는 현재에 주는 충격이 더 강한 듯하다.


작품 활동을 꾸준히 했다면 더 높은 명예와 부를 얻었을 마르셀 뒤샹이 자신의 명성을 뒤로한 채 미술계를 탈피하면서까지 이토록 체스에 몰두한 것은 자신을 '선구자'로 여겼던 경향이 강했던 탓이라는 분석도 따른다. 실제로 MBTI, 에니어그램 및 기타 유형별로 각종 캐릭터나 실존 인물 등을 분석하고 토론하는 용도의 해외 커뮤니티 'personality-database'에 따르면, 마르셀 뒤샹의 MBTI는 ENTP란다. 그야말로 혁명가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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