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없인 난 못살아요

마르크 샤갈 인생의 전부

by 서대문구점
over-the-town.jpg 도시 위에서 (Over the Town,1914~18)

인생의 전부


예술가에게 예술은 기록의 도구이며, 존재의 망각에 대한 두려움의 해소 장치이다. 그래서 그들은 나의 존재가 세상에서 잊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그림을 그렸고, 악보에 음표를 올렸다. 때문에 강렬히 자신이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몰두하고 집착했던 자신의 주제를 예술로 승화시킨다.


마르크 샤갈에게도 재채기처럼 참을 수 없는 기록의 욕망이 있었고, 바로 그 가치는 한 여자를 향한 사랑이었다. 이름은 벨라 로젠펠트(Bella Rosenfeld). 샤갈은 “오랫동안 그녀의 사랑이 나의 예술을 채워왔다”라고 자주 말해왔으며, 자신의 끝사랑 그녀에게서 삶의 이유를 발견하였다.


샤갈은 자서전 <나의 삶>을 통해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서 그녀 곁에 있고 싶다. 그녀의 침묵은 나의 침묵, 그녀의 눈은 나의 눈이고 나의 영혼이다."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그의 세계는 그녀를 중심으로 공전했다.

5138.jpg 샤갈과 벨라, 그리고 사랑의 결실, 딸 '이다'


운명적인 만남


검은 장갑을 낀 약혼녀(My Fiancée with Black Gloves, 1909)

샤갈의 사랑 벨라는 보석상의 부유한 집안의 귀한 막내딸이었다. 둘의 만남은 샤갈이 스물두 살 때 여자 친구 '테아'의 집에 놀러 갔다가 마침 그 집에 방문한 벨라를 마주치면서 시작되었다. 아직 열세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소녀였지만, 벨라를 마주친 순간 샤갈의 마음은 그녀에게로 줄기를 뻗었다.


이후 샤갈은 벨라와의 운명적인 만남을 간직한 채, 1910년 미술공부를 위해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당시 유행하던 입체파 화가들의 그림을 두루 섭렵하며, 앙리 마티스의 색채에 감응한 그는 1913년 베를린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이름을 알린다. 그러나 이듬해 샤갈은 러시아로 귀국하고 만다. 언어의 장벽, 그리고 무엇보다 벨라를 향한 그리움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곧바로 고향으로 향한 샤갈은 벨라에게 청혼한다. 둘은 서로 다른 가정환경에서 발생한 현실적인 장벽에도 불구하고, 샤갈은 벨라의 부모님을 설득해 승낙을 받아내게 된다. 벨라를 향한 뜨거운 사랑과 미술가로서 자신의 비전을 제시하며 벨라의 부모님을 설득했다고 한다. 이윽고 두 사람은 사랑의 증거로서 외동딸이다(Ida)를 낳았다.


비테프스크의 누드(Nude over Vitebsk, 1933)


이후 벨라는 샤갈의 뮤즈이자 삶의 전부가 되었다. 고전적 기품으로 그녀를 해석한 <검은 장갑을 낀 약혼녀(My Fiancée with Black Gloves, 1909)>와 <비테프스크의 누드(Nude over Vitebsk, 1933)>에서 벨라는 그림 위쪽에 자리했는데, 샤갈은 다른 사물보다 유독 그녀를 더 크게 그려 넣었다. 그의 삶에서 그녀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얼마나 커다란지 알려주는 대목이 아닐까.


이후 샤갈은 죽을 때까지 그녀를 담은 그림을 그렸고, 병약한 벨라가 망명 생활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을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그녀가 떠나자 샤갈은 캔버스들을 벽을 향해 돌려놓고 생애 처음으로 붓을 놓고 만다.

85e8857d1302b62f4b21ebdb258f3e9f.jpg 생일 (Birthday, 1915)


나는 벨라가 내 과거, 현재, 미래까지 언제나 나를 알고 있었던 것처럼 느꼈다. 벨라와 처음 만났던 순간 그녀는 나의 가장 깊숙한 내면을 꿰뚫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바로 나의 아내가 될 사람임을 알았다.
-샤갈의 자서전-


숲을 이룬 나무는 시들고, 혼자된 나무는 외롭다.


결혼이 생존에 불리한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과열된 경쟁 속에서 배우자를 만나고 가정을 꾸리는 것에는 경제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닐지라도 돈이 있어야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점은 현실임에 틀림없다. 이제 돈은 인간이 통제 가능한 피조물이 아닌,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자연물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러나, 인간으로서 '사랑하기'를 생존과 결탁하여 결정할 수 있는 가치일까. 우리는 누군가와 관계하길 원하고 관계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찾아야 하는 '실존하는 인간'이다. 이전보다 누군가와 맺어진다는 점이 생존과 결부하여 불리해졌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결국 우리는 누군가와 관계하고 서로를 목격해주어야만 진정 나 다울 수 있다. 이러한 존재의 요청에 대한 우리의 해결책은 누군가와 사랑하는 것 일지도 모른다.


사실 이 글은 나에게 있어서 누군가와 평생 함께할 것인지, 혼자 지낼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나는 숲을 이루고 예쁘게 시들어가겠어요"라는 대답하기 위한 개인적 위기에 관한 글이었던 것 같다.


6fcbf65ad0d08e3711de41fb8dba0138.jpg 샤갈과 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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