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자렛 - The Melody At Night, With You
존재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다가올 미래를 맛보지 못해서가 아니라, 과거 동안 쌓아올린 나란 존재의 소멸이 두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던져진 인생은 반드시 떠나야 하는 때가 있는 법. 늙고 병듦으로써 필멸로 향해 달려가는 인생의 회전목마가 가속도를 갖는 시점은, 젊은 날 내가 경시해온 육체가 나를 배반하기 시작하는 때일 것이다. 죽음의 신호는 오롯이 나의 의지대로 자유롭게 움직이던 신체가 점차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나타난다. 2020년 10월,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Kieth Jarrett)의 손도 마비의 신호를 보내며 세월의 파도는 그를 소멸의 문턱으로 한 발짝 밀어 넣는다.
키스 자렛은 마비되어가는 자신의 신체를 바라보며, 타인의 몸을 바라보듯 이질감을 느꼈을 것이다. 억겁의 외로움이 밀려왔을지도. 그러나 그는 동시에 떠올렸을 것이다. 정작 말했어야 할 이에게 말하지 못했고, 말해주지 않아도 될 이에게 말하고 있었던 자신의 지난 삶을.
나의 삶을 묵묵히 옆에서 지켜봐 주었던 아내가 떠올랐을 것이다. 바스러져 가던 자신의 신체를 바라보며 문득 '마지막 앨범'을 고민하게 되었고, 1998년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겨울밤 자신의 몸이 멈추기 전 아내를 위한 솔로 앨범을 남기기로 마음먹는다.
잠시 후, 집 한편에 마련된 작은 녹음실에서 앨범을 녹음한다. 그녀를 위한 사랑으로 한 칸 한 칸 건반을 누른다. 그는 음과 음 사이의 거리에서 남은 사랑의 음표를 헤아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안온한 연주로 녹음된 그의 앨범은 현재까지도 명작으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