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제라드 이야기

절망에서 나를 일으켜준 한 마디

by 서대문구점
Steven-Gerrard-01-GQ-03Nov14_pa_b.jpg


Who Is Steven Gerrard?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전설적인 미드필더, 리버풀의 심장 스티븐 제라드 (Steven Gerrard)는 커리어 내내 수많은 우승 트로피와 수상경력을 자랑하는 전설적인 선수입니다. 축구선수의 평균 수명이 20년 남짓, 평균 4~5개의 팀으로 이적하는 데에 반해, 제라드는 자신의 커리어 중 무려 17년을 리버풀에서 보낸 충성스러운 선수이기도 하지요.


그는 커리어 동안 11번의 대회 우승과 FIFA 베스트 일레븐 및 UEFA 올해의 팀에 3번씩 선정되었으며, 전성기였던 2005년에는 UEFA 올해의 클럽 축구 선수를 수상하였고, 한 해 가장 훌륭한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수상하는 발롱도르(Ballon d'or)에서도 3위에 오른 바 있습니다.


그러나, 축구선수로 모든 것을 이룬 그가, 끝내 이루지 못한 딱 한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프리미어리그 우승이었습니다. 리그 경기는 20개의 참가팀이 약 10개월 간 38경기를 치러, 이기면 승점 3점, 비기면 1점, 패배하면 0점을 나눠갖고 모든 라운드를 치르고 최종적으로 승점을 가장 많이 쌓아 올린 팀이 우승하는 방식입니다. 순간적인 집중력으로도 약팀이 뒤집어 낼 수 있는 토너먼트와 다르게 장기적인 전략과 집중력을 요구해 쉽게 우승하기 어려운 대회로 꼽히지요.


사실 제라드에게도 이처럼 영광스러운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선수 생활의 막바지를 달리고 있던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2013-2014 시즌, 그에게 마지막 우승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생애 마지막 기회에서 벌어진 치명적인 실수


13-14 시즌 마지막 3경기를 남긴 시점에서 리버풀의 승점은 80점으로 1위를 달리는 상황. 맨체스터 시티와 첼시가 각각 3점, 5점 차로 리버풀을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한두 경기의 근소한 차이였지만 파죽지세의 리버풀은 남은 세 경기를 잡아내면 무려 26년 만에 리그 우승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팀원들은 고무되어 있었고, 리그 우승이 간절했던 제라드에게도 이번 시즌은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Steven-Gerrard-2006-celebration-09052022.png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시작된 36라운드 첼시와의 경기. 양 팀의 팽팽한 경기력이 부딪히며 전반전 막바지까지 0:0 접전을 벌이던 상황, 그러나 제라드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평화롭게 후방 지역에서 볼을 돌리며 공격 전개를 준비하고 있던 상황, 옆 동료 마마두 사코가 최후방에서 빌드업을 준비하고 있는 제라드에게 횡패스를 전해줬습니다. 그러나 제라드는 그토록 쉬운, 평범하게 굴러오던 그 볼을, 20여 년의 선수 생활 동안 수 없이 받아온 패스를 받기 직전 미끄러지며 볼을 놓치게 되었고, 이를 상대편의 공격수가 놓치지 않고 문전까지 끌고 가 손쉽게 마무리합니다.


Steven-Gerrard-2.jpg


그동안 팀에게 헌신해온 제라드를 구원하기 위해 팀원들은 이를 악물고 상황을 반전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경기 막판 리버풀은 무리한 공격을 펼치다가 결국 역습을 허용해 2:0으로 완패하였고, 이 경기를 기점으로 리버풀은 기세를 잃고 꿈에 그리던 리그 우승 문턱에서 또다시 좌절하고 맙니다.


사실 제라드는 첼시전 전에 극심한 허리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고 합니다. 경기에 반드시 출전하기 위해 물리치료와 진통제 등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통증이 가시지 않았고, 마지막 수단인 관절 주사까지 맞고 출전을 감행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실수로 팀이 패배하자 제라드는 당시의 심정을 "내가 불에 타고 재가 된 느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nbc_pl_pltop30no16_220118.jpg


상황으로부터의 도피


첼시와의 경기 후, 제라드는 무너진 자신을 부여잡고 곧장 모나코로 향했습니다. 그는 모든 연락을 차단하고 이틀 동안 죽은 듯이 숨어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날의 실수가 울컥울컥 떠오를 때면 머리를 감싸 쥐며 자책했습니다. 그러던 중, 평소 친분이 있었던 심리 치료사 스티븐 피터스의 문자 한 통이 그를 자학의 구렁텅이에서 꺼내 주는 실마리가 되었습니다.


시간 되면 전화 좀 하자.


스티브가 그에게 말하길, "미끄러진 것에 대한 책임을 너 스스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 실수가 경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스스로 인정해야 한다."라며 벌어진 일에 대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나 덧붙여 말하길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만약 리버풀이 이번 시즌 우승에 실패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이 경기의 결과가 절대적인 원인이었을까? 그리고 너의 실수가 우승 실패의 유일한 원인이었을까?"라고 되물었습니다. 또한 "너는 시즌 중 많은 경기에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활약을 했고, 또 골도 넣었다. 심지어 네가 없는 경기에서 팀원들은 패배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들도 수많은 실수를 져질렀다.” 며, 사건의 책임을 모두 떠 앉지 말라고 충고했습니다.


제라드는 이 통화 이후 다시 한번 정신적으로 일어설 수 있었고, 후에 자서전을 통해 인간적으로 한 층 더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던 시기였다고 회고했습니다.


SOCCER-Liverpool-164841jpg-JS478034086.jpg


제자리걸음이 아닌 성장을 위한 걸음


내 삶에서 벌어진 사건은 오롯이 나만의 실수로 벌어지지 않습니다. 때때로 나의 행동이 전혀 관여되지 않았음에도 사건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제라드의 실수처럼 어떠한 특정 결과에는 영향을 미쳤을지라도, 전체 사건의 수많은 유일한 원인으로 귀결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건의 죄책감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계시다면, 그 일을 천천히 살펴본 뒤 받아들여야 할 나의 실수와 결과의 원인들을 살펴보고, 나의 책임 밖의 일들을 정리해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줄여야 할 것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랑하는 아내를 위한 마지막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