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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대문구점 Mar 16. 2023

우리의 처음을 기억해요

지금 이 편지는 새벽 수유를 마친 후 쓰고 있습니다.

아기에게 분유를 타주는 것도 처음, 글쓰기 모임을 해보는 것도 처음인데요

아기를 돌보다가 이렇게 글을 써보는 것 역시 처음입니다.


태진님에게

태진님이 보내신 처음에 대한 편지 잘 받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맞아요. 모두가 인생은 처음이기에 항상 선택이 수반되고,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하기에 불안하죠.

처음은 설렘과 두려움을 함께 동반합니다.


많은 부분 공감을 했고, 제 자신에 대해서도 돌아볼수 있었습니다

손편지의 힘인가요. 깊은 상담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네요


제가 처음을 대하는 자세는,


솔직하게 말하자면, 

최근의 저는 처음이라는 단어가 무섭습니다. 

무서워져 버렸습니다.설렘보다 두려움이 더 크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새롭게 배우는 것들이 어렵다고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무언가에 또 적응해 나가기가 고되다 여겨지는 것이 그 이유이기도 합니다.

급기야는 처음이 되는 순간을 회피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참 스스로가 유아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감지 되면 도망가요. 감지 능력은 매해 상승합니다.

나이 들면 의연해질 줄 알았는데 그 반대라 애석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처음으로 무언가를 해야 되는 순간을 맞닥뜨려야할 때도 있지요.

내가 어른이라는 사실이 원망스러운 때죠. 

그 땐 정말 난감합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조마조마해지기 때문입니다.

처음이라 어설프게 비추어지는 것이 걱정스럽습니다. 

모른다는 것을 들키면 무시 당한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쪽을 면하기 위해 치밀한 거짓말을 고안하느라 에너지를 씁니다. 

이런 제가 스스로 피곤하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살아온 통밥과 눈치 같은 것들로 서둘러 상황을 파악하고

에둘러 아는 척하는 스킬이 늘고 있습니다. 

저도 모르게 제가 싫어하던 어른들과 닮아가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

한 마디로, 처음에 솔직하지 못하게 되버린 것 같습니다.


지금의 저는 처음이란 단어와 많이 멀어져 버렸어요. 

메타인지라도 하고 있으니 다행인 걸까요. 세상 애달픈 다행이 아닐 수가 없네요.


왜 이렇게 되었을까

타고난 기질과 자라온 환경 탓으로 돌려본 적도 있어요.

하지만 그래봤자 변하는 게 없다는 걸 알고 관뒀습니다. 인생의 선택들은 결국 제가 했으니까요.


그렇게 지내던 때에

그러니까

결론이 없다고 여기던 찰나에 우연한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이 넘치다보면 비워져 버릴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그런 순간이었던 것 같아요. 글쓰기 모임의 공고를 보았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무지성 신청을 했습니다.

지금의 제 상황과 여건을 전혀 재지 않았습니다. 에어팟을 살 때도 한 달 넘게 고민하는 저로선 상당히 과감한 행동이었죠.


그리고 그 곳에서 ‘처음’을 즐기는 모습을 가진 태진님을 만났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처음을 좋아했었던 예전의 제가 기억이 났거든요

첫 모임 후 집에 돌아오면서, 지금의 제 모습에 너무 괴로워만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웃었습니다


‘슬램덩크’에서 산왕공고의 에이스 정우성이란 인물이 있습니다. 

어려서부터 넘어야할 장애물을 발견하면 밝게 웃던 멘탈을 가진 세계관 최강 실력자인데요


그를 맞닥뜨린 서태웅도 결국엔 엷은 미소를 짓습니다. 그 역시도 도전을 삶의 보람이라 여기는 선수이기 때문이죠.


글쓰기 모임을 통해 제가 좋아하던 저의 모습을 다시 끄집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도 난생 처음입니다. 그래서 꽤 설레네요 요즘.



뜬금 없는 얘기지만, 저는 정대만을 가장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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