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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대문구점 Mar 16. 2023

처음은 설렘과 두려움을 등에 업고 다가와요

처음 To 승현님


처음은 설레는 일일까요? 두려운 일일까요? 편지를 적기 전, 연필을 쥐고서 한참 고민했어요. 고민을 거듭해도 뚜렷하게 잡히는 생각의 실마리가 없어서 제가 기록해둔 모든 문장을 뒤져봤는데요. 모든 ‘처음’을 검색해 본 결과, 그중 가장 눈에 띄는 문장이 있어서 옮겨 적어봅니다.


‘테레사와 함께 사는 것이 나을까, 아니면 혼자 사는 것이 나을까? 도무지 비교할 방법이 없으니 어느 쪽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그런데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적혀있던 글이었어요. 위문장의 배경이 된 소설의 내용을 설명해 보자면 이렇습니다. 테레사를 사랑하는 토마시가 그녀와 함께 사는 게 나을지, 혼자 지내는 게 좋을지 고민하는 장면인데요, 그는 그녀의 존재를 감당하기 어려워했어요. 왜냐하면 둘은 삶의 방식이 정반대였거든요. 하지만 그는 그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선택할 수 없었죠. 두 가지 선택지 모두 처음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누구도 결과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고민했을 겁니다.


오해하실까 봐 일러드리자면 저의 혼기가 찼기 때문이 이런 문장에 꽂힌 게 아니랍니다ㅎ 제가 주목한 문장은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는 문장이었어요. 프랑스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는 우리의 삶을 빗대어 ‘세계 안으로 내 던져진 존재’라고 했대요. 그래서 우리는 아무런 의무도, 사명도 없는 존재이며, 각자가 무엇이 올바르고 바람직한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했어요. 하지만 스스로 내린 결정에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불안’을 피할 수 없다고 강조하죠. 저는 그의 말을 반추해 보면, 우리의 삶은 처음이자 마지막이라서, 그래서 모든 선택은 다시 반복할 수 없는 처음이고, 그 결과를 온전히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쉽게 결정할 수 없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어요. 분식집에서 빨간 떡볶이를 시키면 크림 떡볶이를 못 먹는다는 사실을 책임지게 되는 것처럼. 그래서 ‘선택 장애’라는 말도 생겨난 것 같네요.


저의 이야기가 왜 선택으로 흘러가지 싶으실 테지만, ‘처음’이라는 순간은 내가 선택하기 나름이지 않을까 하는 의문에서 출발한 글이었어요. 왜냐하면 저는 ‘첫사랑’이라는 주제를 떠올리며 글을 썼거든요. 언젠가 TV 속 토크쇼에서 MC가 한 패널에게 첫사랑이 언제냐는 질문을 던졌어요. 참 난감한 질문처럼 보였고, 패널은 고민하느라 말을 잇지 못했죠. 그러자 옆 패널이 “내가 정한 사람이 내 첫사랑이지”라며 말을 거들었던 장면이 기억납니다. 그 말을 들은 날, 저도 제 나름의 첫사랑을 정의했던 것 같아요. 내게 처음 사랑을 알려준 사람이 ‘첫사랑’이라고.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면, 처음은 설레는 일 인지 두려운 일 인지 정확히 알 수 없어요. 아마도 제 첫사랑의 순간들이 설레기도 했고 두렵기도 했듯이 처음은 두 가지 가능성을 동반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처음을 맞이하는 일은 속이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자루에 설렘과 두려움이 담긴 공을 넣고, 자루 속에 손을 집어넣어 뒤적이다 공을 꺼낸 뒤, 꺼낸 공과 꺼내지 못한 공에 대한 결과를 받아들이는 일 같아요.


그러고 보니 우리가 이렇게 편지를 쓴 것도 수많은 처음을 받아들여 만들어진 결과 같아요. 처음 SNS에서 저의 콘텐츠를 만들었고, 처음 취재를 다니다가, 처음으로 글쓰기 모임을 저의 SNS를 통해 모집했죠. 수많은 ‘선택된 처음’과 ‘선택되지 못한 처음’이 스쳐지나갑니다.


이 편지가 가져올 결과물이 담긴 주머니에서 우리는 어떤 공을 꺼내게 될까요? 아마도 설렘이 될 것 같네요! 덕분에 앞으로 여러분들과 주고받을 편지가 무척 기대됩니다.


글쓰기 모임에 ‘처음’ 지원해주신 승현님께, 태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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