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았으면 하는 기억 To 고키리님
고키리님께.
안녕하세요 고키리님. 날씨가 많이 따뜻해지고 있는데, 어떻게 지내시나요?
저는 계절의 냄새를 예민하게 맡는 편인데, 최근 며칠은 집 밖을 나서면 완연한 봄 냄새가 저를 반기네요. 부는 바람도 따뜻하고 햇빛은 더 따스한 봄의 초입에서 어떤 생각들을 하시는지 궁금해집니다. 저는 날씨에 많은 영향을 받는 사람이라, 기분도 들뜨고 에너지 넘치는 날들을 보내고 있어요! 곧 머지않아 새싹이 돋아날 것 같아요.
이토록 생명력이 넘치는 봄이 오는 것을 보면서 저는 새로운 열정과 에너지들을 마음에 저장합니다. 이 마음들을 잘 지켜내는 것이 제 한해의 목표이기도 해요. 날씨가 따뜻해지고 3월이 다가오면 거창한 다짐들로 마음이 부푸는 것이 고질병 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생명력을 품은 봄을 따라 마음이 들뜨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 역시 자연의 일부이니까요.
승현님은 봄을 맞아 어떤 마음을 담아두셨나요?
저는 처음으로 학교에 가지않는 3월을 맞이했어요. 저만 멈춰있는 듯한 느낌이 아직은 어색하지만, 제게 주어진 시간들을 잘 보내보려고 합니다. 휴학생인지라, 매일 아침 어딘가로 항하고 누군가를 만나는 일은 잠시 내려놓았지만, 3월의 새학기라는 간지러운 기분에 보고싶은 얼굴들이 많이 떠오르네요. 이렇게 저는 기억을 노래삼아 흥얼거리는 날들을 보고 있습니다.
안그래도 최근에 기억이라는 주제에 대해 혼자 이리저리 고민하고 있어요. 기억은 우리 삶의 척추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적어도 저는 기억과 추억에 많이 의존하며 살아가거든요. 저는 지금까지 쌓아온 기억을 중심에 두고 뻗어나가는 삶을 살고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실제로 기억과, 기억들에서 비롯된 취향들은 한 사람의 삶의 방식을 이끌어가기도 하니까요.
그런점에서 제가 간직하고 싶은 기억은 고등학생 시절의 기억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제가 졸업한 고등학교는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학교에요. 학교가 넓어 서대문구와 중구 두곳에 교문이 있는데, 저는 특히 정동길로 이어지는 동쪽 교문을 좋아했어요.
조용히 거닐곳과 작은 극장들이 많은, 그런 곳에서 3년을 보냈답니다. 동쪽 교문에서 이어지는 정동길은 가로수들이 줄지어 서있어 여름에는 푸르고 충만한 풍경을 보여주고, 가을에는 단풍으로 가득차는 그런 곳이에요. 그곳에서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던 일이 아직까지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어요. 그래서 여전히 날씨가 좋거나, 아끼는 장소에 누군가를 데려가고 싶을 때, 그곳으로 향하는 날이 많네요.
이 시절의 기억들은 저도 모르는 새에 저의 취향이 되고 안식이 되어 여전히 저를 지탱해주고 있어요. 특히 저는 교문에서 나와 시립미술관을 지나고 시청을 거쳐 광화문 광장을 걷는 것을 좋아했어요. 고등학생때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사는 온전한 저의 삶의 시간이 잠시 멈춰있었는데, 광화문 광장에 서서 아주 바쁜 서울의 한가운데를 지켜보고 있으면 그런 제 삶의 시계의 초침이 움직이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때의 저는 광화문 광장을 걸으며 숨통이 트이기도 하고 새로운 열정을 다짐하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전히 그 동네를 좋아하고 자주 찾는답니다.
이 때의 저의 날들을 떠올리면 웃음이 날 정도로 행복한 시간들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아직까지 고등학교 친구들과 아주 가까이 지내요. 우리의 관계들을 튼튼히 연결해주는 것 역시 우리의 추억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기억은 추억이나 향수로 모습을 바꾸어 문득문득 우리앞에 나타나잖아요. 그렇게 나타난 기억들을 누군가와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제게 큰 기쁨인 것 같아요. 우리는 늘 무언가 기억하며 살아가지만 기억이 어떤 것인지, 삶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 깊게 고민해보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이 편지를 쓰며 저의 기억과 추억들을 조목조목 꺼내보는 일이 즐거웠어요. 덕분에 더 소중해진 기억들을 마음에 잘 담아두었습니다.
고키리님은 어떤 기억들을 안고, 또 꺼내보시나요?
들려주실 이야기들을 기다립니다. 변덕스러운 날씨들에, 감기 조심하세요!
2023.3.11
서진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