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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대문구점 Mar 06. 2024

닭,도리를 찾아서

서대문구점 ESSAY : 끄적끄적


요 며칠 흐린 하늘을 뒤로하고 지난주 주말 북아현동 탐방길에 올랐다. 내가 살고 있는 홍제동에서 북아현동까지 가려면 한 번에 통하는 버스가 없어 중간지점인 서대문역 영천시장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했다. 여행길에 오르기 전, 버스 노선을 알아보기 위해 네이버 지도를 뒤적이던 순간에는 탐방길이 ‘닭’ 도리를 찾는 여정이 될 줄 몰랐다.


영천시장에 내려 아현역행 171번 간선 버스에 올랐다. 나는 어떤 공간에 문을 열어젖힐 때 냄새가 전환되는 순간에 휘청이는 편인데, 지하철이나 버스의 문이 열릴 때도 마찬가지다. 버스의 문이 열리고 버스에 올라 카드를 단말기에 태그하려는 순간, 어김없이 버스가 축적하고 있던 냄새와 마주쳤다. 매콤 새콤한 치킨 냄새였다. 닭다리 좀 뜯어본 사람이라면 알 텐데, 이 냄새는 갓 튀긴 닭에 버무린 양념의 협주가 분명했다. 곧바로 고개를 돌려 향의 근원지를 찾아 주변을 살폈다. 이럴 땐 나의 두 귀도 수사에 협조적인 편인데, 치킨이 담겨있을 만한 비닐봉지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찾아 나는 두 귀를 쫑긋거렸다.


마침내 나의 수사 기관들은 냄새의 근원인 황금빛 비닐봉지를 찾아냈다. 지금 생각하면 노란색이지만 분명 황금빛이었던, 그 비닐봉지에 담긴 치킨은 대체 어느 곳에서 구매한 걸까. 드문드문 흔들리는 버스의 요동에 따라 비닐봉지도 따라 흔들렸다. 그 때문에, 봉지에 적힌 구매처의 이름이 한 글자, 한 글자 엇갈리며 춤을 췄다. 봉지를 들고 계신 할머니에게 다가가 치킨을 어디서 구매하셨는지 생글생글 웃으며 여쭤보면 끝날 것을 나는 괜한 오기가 생겼다. 할머니 품에서 요동치는 글자를 맞추고 싶은 긴장감. 그 쪼는 맛이 나영석 사단이 새롭게 개발한 게임 같아서 마치 출연자인 양 그 문제를 알아맞히고 싶어졌다. 게임은 버스에서 내려서도 계속 이어졌는데, 치킨을 품은 할머니께서 아현역에서 나와 함께 내렸기 때문이다. 그쯤 되니 할머니가 내린 건지 치킨이 내린 건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여전히 어디서 사셨는지 물어보면 될걸, 난생처음 건너편 자리 이성의 번호라도 얻는 사람인 양 쭈뼛거린 채 할머니의 목적지가 내가 가려는 식당이기를 바라며 길을 걸었다.


결국 할머니는 할머니의 길을 떠났다. 닭, 도리를 손쉽게 찾아낼 기회는 허망하게 날아갔고 나는 당초 계획했던 북아현동 맛집에 들러 취재를 마쳤다.


떠난 물고기에 대한 기억을 떨쳐내며 나는 애정하는 공간이 있는 영천시장의 한 카페로 향했다. 그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그곳의 사장이자, 연인에게 조금 전 경험했던 향기로웠던 치킨과의 추억을 공유했다. 내 얼굴에 ‘치킨 먹고 싶다’라고 쓰여있었는지, 나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그녀는 닭강정이라도 먹자며 내 팔을 끌어 영천시장으로 향했다. 시장 통로를 한참으로 걸어가 한 닭강정 집의 간판이 저 멀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바로 전에 치킨의 향이 저 멀리서 내게 손을 흔들었다.


할머니의 치킨은 다름 아닌 영천시장 ‘영천 닭강정‘의 양념 닭강정이었다. 향부터 ’그래 바로 이 향이야‘였기에 확신할 수 있었고, 할머니가 들고 가시던 비닐과 정확히 일치하는 비닐이 가게 한편에 놓여있어 확정할 수 있었다. 이렇게 수사 명 ‘닭도리를 찾아서’는 검거 완료로 종결되었다.


반갑다, 봉지야.

둘이 먹기에 충분한 양의 닭강정을 포장해 다시 가게로 돌아와 앉아 포장 뚜껑을 열었다. 닭강정이 풍기던 군침 싹도는 강렬한 향은 여전했고, 나는 같이 포장해 온 다른 가게의 만두보다 먼저 닭강정을 입에 넣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일까. 아쉽게도 닭강정의 맛은 딱 평범한 정도의 수준이었다. 물론 평범하기란 참 어렵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 순간은 내가 먹는 닭강정이 속초 만석 닭강정이나, 인천 신포시장 닭강정쯤 되길 바랐나 보다. 과한 욕심을 부렸음을 닭강정을 씹으며 알아차린 나는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분명 이 정도면 충분한 닭강정인데 말이다. 왜 이리도 욕심을 부렸을까.


맛집이란 때때로 특별하고 귀한 생김새를 요구하는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아침에 누군가 정성껏 발라준 잼 바른 식빵처럼 소소하더라도 어떤 기억을 자극하는 음식도 충분히 맛집의 자격을 갖추고 있는 것인데 말이다. 꼭 이 집 음식을 먹어보기 위해 주말마다 줄을 서지 않아도 맛있으면 맛집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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