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대문구점 Mar 07. 2024

그릇에 제비꽃이 폈어요

서대문구점 059 홋카이도부타동스미레


서대문구점 059 홋카이도부타동스미레�

그릇에 제비꽃이 폈어요


*すみれ(스미레) :제비꽃


홋카이도부타동스미레는 언뜻 보기에 요즘 유행하는 오마카세 집인가? 저녁에만 운영하는 이자카야인가? 라는 의문을 갖게하는 외관이었어요.일본어에 익숙하지 않다면 가게 이름도 모르고 지나치기 좋죠. 누가 봐도 일식집이지만, 무엇을 파는지는 문으로 들어서 보아야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가게는 이전해서 오픈한 자리인데, 이전하기 전에도 부타동 맛집으로 유명했대요. 항상 길게 늘어선 줄 때문에 쉽게 시도할 수 없는 점이 아쉬웠는데, 그 자리에서 사라져서 없어진 줄로만 알았죠. 그러다가 우연히 이 곳에 재오픈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저에게도 홋카이도부타동스미레의 부타동을 맛볼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 곳은 대화금지 식당입니다. 

이 곳의 가장 큰 특징은 손님들의 대화를 금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혼밥을 위한 식당들이 더러 생기면서 혼자 오는 손님들을 위해 칸막이를 설치하는 식당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지만, 이 곳은 일행과 함께 오더라도 오롯이 혼자서 식사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테이블 위에도 칸막이는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따로 또 같이, 그런 느낌일까요? 그래서 일행과 함께 식사를 하는 일이 익숙한 사람들에게 대화가 금지되는 이 곳의 규칙은 어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흔한 맛있다는 표현도, 엄지를 올려서 하거나, 미간을 찌푸리며 젓가락으로 음식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밖에 나눌 수 없으니까요!



음식을 먹는 경건한 행위

나는 맛있는 부타동을 기대하고 왔을 뿐인데, 이 곳은 식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무언의 질문을 던집니다. 평소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거나, 집에서 혼자 좋아하는 영상을 보면서 어? 음식이 언제 다 사라졌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대인의 일상적인 식사의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의도치 않게 대화 없이, 영상 없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경험 속에서, 우리는 음식에 집중하며 식사를 해야 한다는 조언을 했던 어느 이름 모를 교수님의 목소리를 떠올립니다. 빠르지 않게 서빙되는 그릇들 사이로 식사를 기다리는 마음조차 얼마만인지 모르겠어요. 이 조용함에 몸이 배배 꼬이는 만큼, 내가 이렇게 식사를 매일 지나치는 사소한 일로 여겨왔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이 곳에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많지 않아요. 식사를 하는 내내, 내 입 안을 건드리는 감각들에 집중하고, 어떤 조합으로 한 입을 먹는 것이 가장 맛있을까?를 고민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부타동 한 그릇을 깨끗이 비워 냈어요.


그릇 위에 핀 제비꽃

그래서 부타동이 어땠냐면요, 담겨 나오는 그릇부터 예뻤어요. 앉아 있는 바 테이블 위로 뚜껑 덮인 부타동이 전해지면, 그 채로 식탁 위로 옮긴 후에 뚜껑을 열어요. 그 새 돼지고기와 밥으로부터 생긴 수증기가 뚜껑 아래 맺히고, 영롱한 빛깔의 돼지고기 꽃잎, 그리고 귀여운 연두색 완두콩 꽃술이 제비꽃 모양으로 펼쳐져 있어요. 고기는 도톰하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두께예요. 담백한 부위지만 퍽퍽하지 않았고, 비계 부분도 촉촉하고 고소했어요. 숯불로 구웠다는 설명이 테이블 근처에 붙어 있었는데, 숯불 향이 돼지고기 자체를 넘어서 타레 소스에서 나는 것이 이 집의 부타가 특별히 맛있다고 느껴지는 이유였어요. 곁들임으로 나오는 미소시루는 일반적인 미소장국보다는 우리가 잘 아는 시래깃국, 아웃국에 조금 더 가까운 맛이예요. 이 미소시루에 말아 먹으면 밥 한그릇 뚝딱일 것 같은 딱 그런 느낌. 음료 메뉴로 우롱티, 에비스 생맥주, 하이볼을 고를 수 있었는데 우롱티가 메뉴로 나와 있어서 그 이유가 궁금해서 주문해 보았어요. 마치 콜라처럼 서빙되었는데, 고기와 소스에서 느껴지는 조금의 군맛을 우롱티가 완벽하게 잡아 주어서, 신세계를 맛본 듯 잠시 눈동자를 반짝이게 되었습니다. 동행한 에디터님은 에비스 생맥주와 곁들여 드셨는데, 훌륭한 비주얼과 맥주의 청량감에 만족스러운 식사였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문을 나서는 순간 느껴지는 만족감

이 곳에서의 식사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가는 문턱을 넘는 순간, 우리는 일행의 얼굴을 마주보며 이 곳에서 느껴지는 만족감에 대해 공유합니다. 그냥 지나치는 한 끼 식사였을지도 모르는 시간이 만족스러운 시간이 되어 이야깃거리가 됩니다. 사실 이 곳의 부타동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거나, 가장 값진 음식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만족스러운 이유는, 식사라는 일상의 의식에 대해 필요한 만큼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가끔 인간은 음식을 통해 에너지가 채워진다는 단순한 사실을 부정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나에게는 별다른 노력과 돌봄 없이도 항상 에너지가 넘치고, 정서적으로 만족감 있는 삶을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을 때 말이죠. 그렇지만 이 곳에서 먹는 부타동 한 그릇과, 식사에 집중하는 경험은 나에게 충전이라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되새기게 합니다. 그리곤 깨닫게 되죠. 아무리 바빠도 이렇게 멈추어 서서 좋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 김밥과 샌드위치, 컵라면만으로 끼니를 때우며 모든 일을 척척 해내는 자가 발전기 같은 삶이, 멋져 보일지언정 결코 좋은 삶은 아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좋은 음식 한 그릇, 한 끼 식사의 경험으로 만족감을 느끼는 사람이구나. 이런 만족스러움 경험들에 나를 충전해 가며, 가야할 곳까지 더 멀리 나아갈 수 있겠구나 싶어요.



주소 | 서대문구 창천동 5-32

위치 | 창천동 명물길 삼거리 안쪽 골목 

시간 | 11:30 - 20:30 (매주 월 휴무), 

         브레이크타임 14:30-17:00, 재료 소진시 마감


Instagram | @sedaemun.9

                    

매거진의 이전글 닭,도리를 찾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