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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대문구점 Apr 17. 2024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예술가

인터뷰 : 김두진 화가

*이 인터뷰는 2023년 4월 진행된 인터뷰를 재발행하는 것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 예술가

예술이 함께하는 동네 연희동은 매년 벚꽃이 지고 녹음이 우거지는 계절마다 예술축제를 벌입니다. 올해로 4회 째를 맞이하는 ‘연희아트페어’는 지역 기반의 신진작가들과 오래전부터 연희동에 정착한 중견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예술의 현주소와 미래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에게 동네 속 예술 공간을 제공하고 있지요.


보물 찾기를 하듯 산책로 곳곳에 숨겨진 열세 개의 갤러리를 탐방하다 보면, 우연히 내 마음에 울림을 전하는 작품을 발견하고 취향 목록에 저장하는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어요. 지난 토요일, 아터테인에서 우연히 만나 이야기 나누게 된 김두진 작가님도 저희 마음에 잔잔한 울림을 전해주셨고, 함께 나눈 뜻깊은 대화를 여러분들께 전해드리고자 합니다.



연희아트페어는 어떤 계기로 참여하게 되셨나요? 아터테인 대표님과 오래 알고 지낸 사이여서 참여하게 된 것이 큽니다. 물론 저도 연남동에서 오래 거주한 주민이었고, 작업실도 연희동에 두었다가 지금은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서 다른 곳으로 옮겼어요. 이곳이 점점 핫한 동네가 되면서 원래 자리하던 사람들이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할 수 있죠?


사람을 모으는데 큰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 동네 바깥으로 내몰리게 되는 일은 안타까운 것 같아요. 음… 사람이 점차 늘면서 일어나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해요. (어깨를 으쓱이며)


홍연길 초입, cmgg 라운지


기왕 사람이 몰릴 거 ‘연희아트페어’가 많은 사람들을 모았으면 해요, 연희아트페어의 가능성은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연희아트페어는 작가층이 젊어서 신선한 느낌이 들고 실험적인 작업 방식과 형태를 경험할 수 있어 좋아요. 작품 사이즈나 가격대도 착한 것들이 많아 작품을 구매하는 경험의 입문으로도 좋을 것 같고요. 여타 아트페어에 비해 일반인도 부담 없이 접근하고 방문해서 소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점이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연희아트페어가 열리는 홍연길에는 바깥에서도 갤러리 안을 바라볼 수 있는 오픈윈도우 형태의 갤러리가 모여 있습니다. 작가님은 갤러리가 있는 홍연길을 걷다 보면 어떤 인상을 받으시나요? 홍연길은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들이 많아서 좋아요. 이 길에 문화 공간이 생기면서 거리의 온기가 늘어난 것 같아서 앞으로도 많이 발전될 것이라 믿어요. 문화에 대한 문턱이 높긴 해도, 연희동 근처의 갤러리는 편안하게 방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앞으로도 이런 방향성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연희아트페어에 참여한 갤러리 중 독자분들에게 추천하시고 싶은 공간이 있을까요? 아터테인이죠! (하하) 아터테인 외에도 ‘호호갤러리’ 처럼 다양한 작가 작품이 다수 전시된 곳도 좋아요. ‘갤러리인'도 눈에 띄고요. 


작가님의 수많은 작품 중 연희아트페어에 ‘토르소’를 출품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제 작품이 전반적으로 사이즈가 큰 편이지만, 기존의 아터테인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사이즈의 작품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전에 '리안갤러리'에서도 전시를 했던 거예요. 아터테인과도 이 작품이 잘 맞을 것 같아 가장 잘 보이는 위치를 지명해서 걸어주길 부탁드렸죠. 전시는 처음과 끝에 걸린 작품이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래서 저는 제 작품을 처음이나 끝이 아니면 걸지 않죠. (하하)


작품에 주로 사슴을 비롯한 초식동물의 뼈를 사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일반적으로 백인, 이성애자, 남성이 생태계의 최상위에 있다고 생각해서 이상적인 서구 남성의 골격으로 만든 토르소를 소환했고요. 반대로 생태계의 최하위에 있는 초식 동물의 뼈를 가져와서 최상위와 최하위의 대비로 삶과 죽음의 대비, 문명과 야만, 기독교와 이교도 등의 상반된 대비를 충돌시켜 보여주려 했어요. 초식동물은 이민자나 여성, 사회 약자를 상징하고요. 최상위권의 이성애자 백인 남성이 구축한 이성애 문화가 어찌 보면 약자들의 희생으로 구축된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점으로 연결돼요. 어찌 보면 약자들의 희생이 강요되었다 생각해요. 토르소 역시 우람한 근육질의 서구 남성 이미지를 본뜬 것으로, 대비되며 와해되는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었어요.


김두진 작가님의 '비너스 탄생' / 출처 : SeMA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작품으로 발전되기까지 도움이 되었던 학문적 흐름이나 도서가 있으셨나요? 어떤 책이나 흐름에서 영감을 받기보다는. 내 자체가 게이, 성소수자라서 오랜 시간 동안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인간의 가죽과 살을 벗겨내고 뼈만 보면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찾아보기 힘들고, 골반뼈 정도에서 차이가 보여요. 여자는 아이를 낳기 위해 사각형이고, 남자는 역삼각형인 점 정도. 그런데 이것도 자세히 봐야만 그 차이를 알 수 있어요. 이처럼 미에 집중된 환경에서 벗어나 해골을 사용하면 고정된 시각에서 탈출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제 작품 중 <비너스 탄생>은 인간의 피부를 벗겨낸 신체를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에요. 여기선 비너스의 골반뼈를 교묘하게 남성의 골반뼈로 바꿔 넣었어요. 자세히 관찰하지 않는 한, 모두 같은 사람이니까요. 이는 하녀나 아름다운 비너스나 다 동일한 뼈 구조를 가진 동일한 인간이라는 것을 의미해요. 여기서 조금 다른 버전의 작업물이 사회적 약자인 동물뼈를 활용한 것들인데요. 음, ‘사회적 약자’라기 보다… ‘사회적 소수자’죠. 이 작품에서 또 살펴볼 점은 켄타우로스가 만일 현존한다면 어떤 뼈 구조를 가졌을지를 현실적으로 표현하고자 수의사 친구에게 자문을 구해 고안한 켄타우로스(상반신은 인간, 하반신은 동물)의 뼈도 있고요. 천사의 날개 부분을 박쥐 날개로 표현한 것도 있어요.



10월에 또 만나요


작가님은 다가오는 10월 ‘플레이스막’에서 새로운 전시를 구상 중이라고 하셨어요. 삶을 주제로 인생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희로애락의 찰나를 피부가 벗겨진 해골들로 표현하는 작품들을 선보일 예정이라고 전하셨습니다.


인터뷰 내내 예술과 연희동을 향한 김두진 작가님의 태도는 부드러우면서도 건강해 보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는 10월 플레이스막에서 다시 만나자는 느슨한 기약을 남기며, 예술과 동네, 작가님과 한 꺼풀 더 가까워졌음을 느낄 수 있었던 인터뷰였습니다.


소중한 시간 내어주신 김두진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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