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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인의 맛… 그래, 여름이었다

서대문구점 146 | 연희동 위로를 건내는 카페 ‘래인’

by 서대문구점

글&사진 @seodaemun.9 가게. @raeincoff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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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를 고르는 이유는 참 다양하다. 집과 가까워서, 의자가 편해서, 무드등이 예뻐서, 스콘 맛이 마음에 들어서, 심지어 콘센트가 많아서 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많은 이유 중에서 ‘맛’을 최우선으로 내세우는 카페는 생각보다 드물다.


홍제동과 연희동 사이, 조용한 골목에 자리한 카페 래인은 바로 그 ‘맛’에 진심을 다하는 공간이다. 음료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이고, 흔치 않은 재료와 레시피로 자신만의 맛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곳에 한 번 발을 들이면 그 맛이 자꾸 생각나게 될 것이다.


사장님은 아쉽게도 곧 가게를 옮길 계획이라고 전했다. 새로운 장소에서도 래인은 변함없이 맛 좋은 커피와 음료로 손님들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니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며, 조용히 그 순간을 기다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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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결’이라는 음료, 맛이 층층이 쌓여 있어서 맛있어요. 말차, 자몽, 은은하게 퍼지는 수박향이 인상적입니다. 다른 카페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퀄리티예요.


카페에서 메뉴를 개발할때 우유나 커피를 쓰지 않으면 선택지가 확 줄어요. 보통은 우유나 커피를 베이스로 잡는데, 이걸 제외하면 변주를 주기가 어렵죠. 아메리카노의 변형 정도랄까. 그래서 '우유도 안 쓰고 커피도 안 쓰는 메뉴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을 때, 말차가 떠올랐어요. 원래도 말차를 좋아했고, 디저트에 쓰던 말차 가루도 있었던 상황이에요.

허브나 레몬이랑 말차 조합은 종종 봤지만, 자몽과의 조합은 제가 접해보지 못했어요. '이 조합을 왜 안 할까?' 생각했죠. 맛이 없어서 안 하는 걸까, 아니면 그냥 아무도 안 해본 걸까? 결과적으로 해보니 꽤 만족스러웠고, 그다음은 계속 디벨롭하면서 지금 메뉴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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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를 다니다보면, ‘아 이곳은 여기에 힘을 줬구나’싶은 포인트가 보여요. 래인은 어느 포인트에 힘을 주고 계신지 들어보면 좋겠어요.


저는 맛입니다. 우선 되도록 기성품을 안 써요. 직접 만들 수 있는 건 다 만드는 편이에요. 재료가 좋지 않으면, 결국 내가 원하는 맛은 안 나오거든요. 요즘 손님들이 카페를 찾는 기준이 맛보다는분위기, 위치, SNS에 올릴만한 공간인가 등 다른 요소에 치중돼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저는 맛을 최우선으로 두고, 정직한 재료로 정성을 들이고 싶어요.

제가 가진 강점은 ‘음료 개발’이라고 생각해요. 남들이 안 쓰는 재료로, 이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음료를 만드는 건 자신있어요. 그건 지금도 흔들리지 않는 제 가게의 핵심이에요.


‘이것까지 직접 만든다’할만한 것도 있을까요? 혹시 설탕시럽도 직접 만드시는 건 아니죠?!


설탕시럽은 당연히 만들죠. 여름결에 들어있는 '허브 시럽'도 직접 만든거고요. 매장에서 만들 수 없는 걸 제외하면 다 만들어요. 예를들어 제가 사용하고 있는 '오스만투스(금목서)'라고 하는 꽃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시럽은 만들 수 없기 때문에 구입하는 편이 좋아서 구매해 사용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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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섬세함이 아니네요. 그런데 실용음악을 전공하셨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 일을 하시게 된 걸까요?


2009년, 처음 카페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파트타이머였고, 실용음악 전공하던 학업을 중단하고 당장 돈이 필요해서 시작했죠. 뭔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생계를 위해서. 그 당시에는 커피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도 없었어요.

군 전역 후, 동네에 새로 생긴 카페에 손님으로 갔다가 일하게 됐어요. 당시엔 스페셜티라는 개념이 생소했는데, 내가 일하던 일반 매장과는 뭔가 다르더라고요. 특히 드립 커피를 추출하는 공간이 새로웠고요.

그런데 거기 사장님은 가게를 자주 비우셨어요. 자연스럽게 손님들이 저를 사장님으로 착각할 만큼 많은 책임을 맡게 됐어요. 그때 처음으로 ‘내 공간이 생기면 이런 기분일까?’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사실 그전까지는 그냥 ‘일’로만 카페를 봤거든요. 그 시기부터 ‘커피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죠.


‘래인’까지 오는 과정의 출발이었군요. 조금 더 자세히 들려주세요.


그 매장을 나온 뒤 ‘원효로 커피’라는 스페셜티 카페에서 일했고, 이후 건대 2호점 오픈 멤버로 들어갔어요. 로스팅을 직접 하는 로스터리 카페였고, 싱글 오리진도 처음 접했고요. 커피 철학이 굉장히 뚜렷한 오너 밑에서 많이 배웠죠.

이후엔 여러 카페를 거쳐 마지막으로 서래마을에 있는 쇼룸형 카페에서 헤드 바리스타로 일했어요. 거기는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쓸 수 있었고, 제가 메뉴 개발에 있어서 실험할 수 있는 환경이었어요. 지금 제 매장에서 인기 있는 ‘래인 라테’도 거기서 처음 만든 메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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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겨다니는 과정이 일종의 수련 과정처럼 보여요. 여러 곳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셨고요.


서래마을에서 일하던 때가 가장 많이 성장한 시기였어요. 그곳에서 함께 일한 선배는 바리스타 대회 챔피언이었고, 저랑 단둘이 6~7개월 일했는데 처음 3개월이 정말 강도 높은 트레이닝이었어요.

예를 들어 매일 아침 에스프레소 테스트를 하는데, “세 잔 안에 추출 테스트를 끝내라”는 조건이 있었어요. 이유는 그 이상 마시면 혀가 피곤해서 정확한 평가가 어렵다는 거죠. 제가 아무리 정리해서 가져가도 “너가 말한 맛은 하나도 안 나오는데?” 하는 반응이었어요. 그때는 제 경력도 10년 정도 됐기 때문에 솔직히 자존심 상하기도 했지만, 돌아보면 진짜 많이 배웠고 지금도 그 시간이 그리울 정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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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매장을 운영하시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결정도, 유지도, 실험도 전부 제가 혼자 해야 해요. 손님 없는 시간에 가게에서 혼자 있으면 진짜 별별 생각 다 들어요. 동네 분위기, 날씨, 경기 상황 다 신경 쓰이고요.

또 서비스업이라는 점에서 오는 어려움도 있어요. 제가 처음 보는 손님들에게 사근사근하게 다가가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저는 얼굴에 다 드러나는 스타일이라 그런 상황에서 감정을 숨기기가 힘들어요. 예를 들면 결제하려고카드를 바닥으로 밀어준다거나, 가구에 낙서를 한다거나하면 표정으로 드러나죠. 그래서 리뷰도 ‘불친절하다’는 평과 ‘너무 친절하다’는 평이 엇갈려요. 하지만 그게 저의 어쩔 수 없는 약점이라서 잘 안고 가야죠.


요즘 카페 하나만 해도 ‘환대’, ‘SNS’, ‘맛’ 등 다양한 것을 요구하잖아요. 그런데 혼자서 이 곳을 운영하시니 한계가 있는 것은 당연할테죠.


혼자서 일하다보면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문제만큼 보이지 않는 감정의 피로가 커요. 모든 걸 혼자 판단해야 하고, 누구랑 나눌 수도 없고. 아이도 어리고, 아내는 육아로 고생하고 있어서 저와 생업 이야기를 깊게 나누기 어려울 때도 많고요. 카페 운영은 단순히 좋아서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구나, 요즘 많이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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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매장을 옮기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많은 분들이 아쉬워하실 것 같아요.


아직 정확한 장소를 정한 건 아니에요. 다만 지금 있는 골목에서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었어요. 사실 가게를 옮긴다는 게 복잡할 것도 없이, 전에도 똑같은 이유였거든요.

이전 매장은 간호대 근처의 작은 골목 안에 있었어요. 한 8~9평 정도 되는 곳이었는데, 그 동네는 지금 이곳보다 연령대가 훨씬 높았어요. 가게 앞은 차 한 대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골목이었고, 가장 젊은 손님이 50대였을 정도니까요. 웃긴 건 거기도 홍제동이었어요. 포방터 다리를 건너야 홍은동이고, 안 건너면 여전히 홍제동이더라고요.

그때 이사를 결심한 이유는 단순했어요. 처음 창업할 때 제 목표가 세 가지였거든요.
첫째, 내가 그동안 남의 가게에서 해온 커피와 음료가 과연 ‘내 가게’에서도 통할까?
둘째, 그래도 이 근방에서 ‘커피 잘한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자.
셋째는, 가게를 계속 유지하는 거였고요.

세 번째는 결과적으로 실패했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는 나름 만족스러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옮겼던 거고, 지금도 같은 이유로 이전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결국은 제가 생각하는 ‘카페’라는 공간이, 이 지역에선 별로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한 1년 반쯤 지나니까 그게 아주 절실히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더 오래 붙잡고 있을 이유가 없겠구나 싶었어요.


KTJ07698.jpg '킁킁' 원두의 향기를 맡아보아요.


이 동네는 아무래도 연령대도 높고, 음료를 소비하는 문화의 양상이 조금 다르죠.


맞아요. 여기에는 그래도 젊은 손님도 오시고 멀리서 찾아주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이 공간이 이 동네에서 ‘필요한’ 모양새는 아닌 것 같아요.

사실 어디를 가도 비슷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어요. 아예 판을 바꾸지 않는 이상은요.
사람들은 ‘일본가면 잘하겠다’, ‘도산 공원 요즘 핫하던대’라면서 한마디씩 보태요. 뭐, 저도 생각은 해봤죠. 근데 현실적인 고민이 따르니까 저 나름의 고민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는 부분이네요.


아직 여길 내놓지 않았고, 정리가 되어야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그냥 방향 정도만 보고 있어요. 어디를 가볼 수 있을지 대략적으로요.

마음 같아선 빨리 정리하고 빨리 움직이고 싶어요. 그게 가장 좋은 타이밍일 테니까요. 근데 가게라는 게 제 마음대로만 되는 건 아니니까, 우선 여기 정리를 잘 마치는 게 우선이에요.


그래도 사장님이 지금까지 해온 과정들을 들어보면 어디를 가셔도 잘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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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ㅣ서울 서대문구 모래내로 390

위치ㅣ신연중학교 앞!

시간ㅣ11:00 - 19:00 (매주 일요일 휴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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