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시장에서 분짜먹다가 세계 평화에 대해 생각한 날

서대문구점 147 | 영천시장 주말이면 줄 서는 ‘베트남시장쌀국수’

by 서대문구점

글&사진 @seodaemun.9 가게. 베트남시장쌀국수


베트남시장쌀국수.jpg


‘베트남시장쌀국수’는 천연동 영천시장 깊숙한 곳에 있다. 주말이면 줄이 길게 늘어설 만큼, 동네에선 이미 입소문이 난 곳이다. 나도 쌀국수가 당길 때면 가끔 찾아가 한 그릇 후루룩 해치우고 온다.


가게 내부는 베트남 호이안의 ‘옐로우 시티’를 닮은 선명한 노란색이다. 베트남에선 이 노란빛이 토지를, 그리고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한다.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 이 노란 벽들이 낯선 동시에 낯익다. 무언가를 지워버리기보다 쌓아 올리는 방식의 문화가 이 공간에도 스며 있다.


IMG_6137.jpg
6._morning-light-hoi-an-1024x683-1479705704.jpg 베트남 호이안의 '옐로우 시티'


식사를 하며 문득문득 생각한다. 요리를 하는 분들이 베트남 분들 같던데, 어디에서 오셨을까. 한국엔 익숙해졌을까. 나는 다낭을 짧게 다녀온 적이 있지만, 그들은 이 동네에서 훨씬 오래 살아왔다. 그렇다면 누가 이방인일까? 나는 모호한 경계, 뒤집힌 상황이 즐겁다.


IMG_6125.jpg
IMG_0643.jpg


오래전부터 다문화 가게에 관심이 많았다. 그들이 가져온 고유한 문화가 이곳의 풍경과 섞여 새로운 색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동남아 문화권의 주요 교통수단인 전기 스쿠터가 그렇다. 이는 동네에서 가끔 발견되는데, 지나가는 전기 스쿠터 뒤에 아이가 타 있는 모습이 '문화적 섞임'의 한 예의다. 익숙하지만 낯설고, 낯설지만 아름답다.


나는 외국인 노동자가 많은 지역에서 고교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스스럼없이 누군가를 낮춰 부르던 말들, 싸늘한 시선이 기억 속에 선명하다. 어른도 학생도 스스럼없이 그들을 낮춰 불렀다. 우리가 만든 계급 사회에서 작동하는 문화적 울타리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나 역시 유럽 문화에는 동경을 품고, 동남아에선 ‘물가 싼 곳에서 대접받고 싶다’는 이중적인 욕망을 지닌 적 있다. 그런 태도는 어느새 배어든 것이었고, 때때로 아직도 내 안에 남아 있음을 안다.


그러나 영혼은 생각이 좌우하기도 하지만, 행동이 좌우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곳에서 고수 대신 깻잎이 올라간 분짜를 보고 '현지식이 아니네'라고 하기보다, '어울리네' 하며 기꺼이 맛있게 먹는다. 사실 이 조합은 시장의 강한 입맛에 맞추기 위한 타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이 깻잎을 하나의 해석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낯선 것과 익숙한 것이 섞여, 또 하나의 현실이 되는 방식으로 말이다.


IMG_0636.jpg
IMG_6123.jpg


옆 테이블에선 엄마와 두 아이가 숙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음료를 주문하자 사장님이 콜라, 사이다, 그리고 베트남 음료도 있다고 하셨다. 엄마는 반가운 듯 베트남 음료를 골랐다. 그 작은 선택 안에서 다름을 향한 열린 태도를 본다.


우리는 자주, 설명 가능한 사실만을 쫓는다. 그러나 때때로 더 중요한 건 납득 가능한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다. 누군가에게는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노란 벽 사이에서 분짜를 먹는 오늘 같은 날처럼.


이 가게처럼, 우리 주변의 낯섦이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IMG_5211.jpg 주말 점심은 줄 서야 해요.

주소ㅣ서울 서대문구 영천시장길 30

위치ㅣ갈현동 할머니 떡볶이 둘째네 옆 팥죽집 뒷편

시간ㅣ10:30 - 21:00 *라스트 오더는 20:30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래인의 맛… 그래,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