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녀가보고서 | 서대문구 신촌극장 '발등 위에 나비' 관람 후기
중학생이던 시절, 한 통의 등기가 할머니 앞으로 도착했다.
“할머니, 이게 뭐야?”
“대동아전쟁에 참전했던 친척의 유골이 발견됐다나 뭐라나…”
“할머니 사촌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어?”
“나도 몰라. 너무 오래전 일이라.”
“그럼… 찾으러 가야 하지 않아?”
그 질문에 할머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1933년에 태어난 할머니는 열 두살에 독립을 맞이했다. 그녀가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났다면, 억울하게도 모욕적이고 끔찍한 일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나는, 그녀를 대신해 더 적극적으로 싸우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 오른쪽 어깻죽지에는 마포중앙도서관 앞에 있는 '마포 평화의 소녀상'이 세겨져 있다. 할머니 앞으로 등기가 도착한 날부터 이상하게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가 않기 때문이다.
연극에 대한 오해가 많아서, 예매 앞에서 망설이다 포기하곤 했다. 하지만 ‘발등 위의 나비’는 고민없이 예매했다. 신촌극장은 꼭 한번 가 보고싶었던 마음도 컸다. 하지만 무엇보다 봄이 끊어진 소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신체 깊숙한 곳에서 혀처럼 손이 쑤욱 뻗어져 나와 그 이야기를 끌어당겨 삼키고 싶다. 가끔은 그녀들의 이야기를 피부가 아니라 뼈에 세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공연이 열린 곳은 신촌의 오래된 빌라 옥탑. 극장을 향해 걷는 길인지, 친한 친구의 집에 놀러가는 길인지 헷갈릴 만큼 일상과 공연의 경계가 흐릿했다. 그 모호함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었다. 대기 공간도 그저 평범한 대리석 계단. 계단에 앉아 숨을 고르다 보면 ‘대체 누가 빌라 옥상에 극장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물음표 싹이 튼다. 공연장 문을 열면 의외로 완벽한 무대가 펼쳐진다.
신촌역 경의중앙선 라인이 바로 앞을 스친다. 공연 중간중간 들리는 열차 소리가 공연에 허락된 효과음처럼 들린다. 자연스러운 섞임이다.
무대 위 김수아 배우는 한지처럼 따뜻한 크림색 옷을 걸치고 몸과 목소리로 공간에 그림을 그렸다. 그녀는 동양의 붓처럼 획을 그었고, 그 움직임은 객석의 숨죽인 공기가 조용히 따라 흔들렸다.
연극이 끝난 뒤, 해소되지 않은 애도가 뜨개질처럼 영원히 이어질 거라고, 내가 그 뜨개의 실이 되어 다음 사람에게, 또 그 다음에게 이어주겠다고 마음속으로 약속했다.
그리고 행동해야겠다. 시대의 파도에 휩쓸려 상처 입고 늙어버린 이들에게 나는 언젠가 조용히 양말 한 켤레라도 신겨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