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가 차별을 만든다.

지하철의 노약자석은 노인들을 격리시켰다.

by 서대문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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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외부 일정을 처리하기 위해 허겁지겁 올라선 지하철은 좌석마다 띄엄띄엄 빈자리가 눈에 띌 정도로 한산했다. 빈자리를 찾아 앉을까 했지만 목적지도 멀지 않았고 여유롭게 자리 잡은 사람들 틈에 끼어 앉는 것이 내 딴에는 우악스럽게 느껴져 서서 가는 편이라 맨 구석 자리의 기둥을 잡고 서 있었다. 무엇이 불편하셨을까, 앉아 계시던 어르신 한 분이 눈치를 살피시더니 노약자석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내가 편히 누울 자리는 관짝밖에 없다는 우리 할머니의 한탄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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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산부석, 노약자석, 여성전용 주차장, 노키즈존.


철학 없이 그어댄 배려가 또 다른 차별을 낳았다. 노약자석의 존재는 칸마다 어르신들을 격리함으로써 일반석의 권리도 함께 박탈했다. 격렬하게 핑크색으로 티를 낸 임산부석은 ‘제가 임산부입니다.’ 증명해 내야만 자리를 배려 받을 수 있고, 성별 간 상대적으로 다르게 발달한 감각의 차이에 대한 배려는 일방적으로 주차공간을 내어주는 방식으로 괜한 공분을 사고 있다. 이게 배려일까 멕이는 걸까.


배려의 정도는 주는 자가 함부로 가늠할 수 없는 범위이며, 그 정도는 받는 자가 먼저 그어주어야 할 선이다. 받는 자는 스스로의 가치가 깎이지 않는 정도의 선을 알아두고, 그 선을 넘는 배려는 정중히 주는 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받는 자가 필요 이상의 호의를 받게 되면 주는 자와의 관계 불균형이 발생해 어느 쪽으로든 기울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주는 자는 마냥 머뭇거릴 필요는 없다. ‘나눔에 있어 이리저리 헤아려보다.’는 뜻의 ‘배려’의 한자어는 주는 자가 가져야 할 태도에 깃든다. 나누어 주기 전, 받는 자의 입장을 헤아려보고 나눔에 있어 상대를 약자로 바라보고 업신여기는 마음은 없는지, 주는 것이 상대의 가치를 손상시킬 정도로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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