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 결국 나는 욕망하는 인간이다.
나는 살기 위해 쓰고, 살기 위해 듣고, 살기 위해 사랑한다. 인간이 혈혈단신 아기로 태어나 살아남기 위해 처음 본 여자와 남자에게 복종해야 함을 인정하고 -물론 복종의 기간은 매우 짧지만- 각각 엄마 아빠의 자격을 부여하며 인정하고 웃어주듯이. 그리고 짝지은 무수한 수의 남녀가 사랑과 평화를 지키기 위해 서로의 허물을 눈감아 주는 것처럼. 나의 행동 양식과 사고방식도 본래 인간이 태어났을 때 장착되어 있는 생존본능에 따라 움직이며 결정되었고 한 겹 한 겹 축적되어 하나의 궤도를 그렸다. 이러한 궤도는 의식적이던 무의식적이던 나의 생존을 위해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반응이며 경험칙이었다.
지구 상에서 자신보다 수백 배는 커다란, 동시에 수백 배로 중력을 견뎌내던 공룡을 밀어낸 작은 인간은 어떻게 이 험난한 지구에서 살아남았을까. 먹으면 죽을 수 있는 것들로 가득한 자연에서, 비바람을 피하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환경에서, 섹스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시간의 유한함 속에서, 지금도 형태가 달라졌을 뿐 생존의 본질 불변의 지구라는 공간 속에서 말이다.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안간힘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언제나 아름다웠다. 아름다웠기에 살아남은 것일까, 살아남았기에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인가 정확히 가름해낼 수 없지만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지나간 흔적은 가히 미학적이라 할만하지 않은가. 가끔은 부수고 괴롭히는 모든 고통과 가학을 견뎌내면서, 혹은 관망하며 즐기면서 쏟아 놓은 흔적들 말이다. -여기서 생존을 위한 발버둥, 즉 생존 본능이 남긴 아름다운 흔적은 아주 사소하고 우리가 보잘것없다고 말하는 모든 것들을 포함한다.- 가령, 아기가 한 명의 인간으로서 먹을 것을 구하고, 위험 상황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즉 생존하기 위해 처음 두발로 땅을 딛고 일어나는 아기 기립은 성스러울 정도로 아름답다. 이를 보고 눈물을 흘리는 부모도 있지 않은가. 또 천년의 고도를 자랑하는 경주의 불국사도 시공자 김대성의 생존본능이 담겨있다. 1500년이 지나도 무너지지 않은 것은 불국사를 날림 건축을 했다면 클라이언트가 그와 그 자손을 가만히 두었을까. 우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느꼈을 때 납득할 만한 이유로 설명 지으려는 경향이 있어서 잡다한 이유를 붙여 그 아름다움을 설명하지만, 실상 모든 아름다움은 결국 우주의 티끌, 인간의 생존본능으로부터 출발했다.
나는 아름답기 위해 생존하고, 생존하는 것이 아름답다. 예쁨 그 이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아름다움은 욕망을 동반하며, 그 욕망은 소유하고 싶은 충동으로 발현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파괴하고 괴롭히려는 변태적 행동으로도 발동된다. 욕망은 매우 날 것이다. 살아있는 그 무언가, 인위적인 포장지는 한 꺼풀도 존재하지 않는 날 것. 결국 나는 욕망하는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