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엔 사랑 고민
가끔 나는 어떻게 죽을까 하루 종일 붙잡고 고민하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아마 비가 와서 그럴지도. 죽음의 신 하데스가 있는 지하로 천착하는 나의 고민은 훗날 존재할 하데스와의 조우가 두려워 지레 겁을 먹고 대비하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라는 소멸과 존재의 가벼움 앞에서 인간 필멸의 초라함 같은 거창한 감정을 느껴서도 아니다. 나는 그런 예술가는 못된다. 나는 그저 전략을 세울 뿐이다. 썩 괜찮은 죽음으로 가는 전략 말이다. 후줄근한 고민이지만 집어파다 보면 결론 없이 끝나더라도 한결 청결해지는 고민 시간. 곧바로 실행에 옮기기 위해 손에 익은 종이와 펜을 꺼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두려움으로 빨려 들어가는 매몰이 아닌, 썩 괜찮은 죽음으로 가는 전략 구상이랄까. 아마 모든 상상력을 총동원해 삶의 공포로 귀결 짓는 친구 녀석에게 말했다면 119에 신고전화를 해주었겠지. 이 놈이 자살을 하려고 계획을 세운다고.
궁핍할 질감의 잿빛 재생지와 손에 꼭 맞는 펜을 찾았다. 가로로 쓱, 세로로 쓱, 열십자 모양으로 줄을 긋는다. 그래 이건 삶이라는 좌표야. 가로선 x축은 운의 축이다. 세로선은 y 축은 재능의 축이다. 내 삶의 중요한 가치를 결정짓는 요소를 운과 재능으로 나누어 내 삶의 중요한 가치를 하나씩 값을 매겨 점을 찍어 본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30분 일찍 일어나 책을 읽는 일은 재능의 영역에 더 깊이 위치할 것이다. 우선 책을 읽으려면 순전히 내 노력으로 30분 더 일찍 일어나야 하지만, 전 날 회식이나 밤 잠을 설치는 날이 있을 수도 있다는 운의 변수를 잊어서는 안 된다. 결국 일찍 일어나는 것은 노력으로 얻어지는 재능에 더 가깝다.
그래프의 찍힌 방점은 크게 두 계열로 나뉜다. 커리어나 사랑으로 묶인다. 두 계열 중, 생각의 난이도는 사랑보다 커리어가 훨씬 쉽다. 커리어는 큰 그림 안에서 내가 기민하게 움직이고 막히는 부분은 재능으로 채울지, 운에 맡길지 고민하면 끝이다. 큰 그림이 틀렸다 싶으면 수정하면 금방 수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모르겠다. 재능의 축으로 움직이자니, 사랑은 비상식일 때가 많다.
운의 축으로 움직이자니, 나의 사랑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그래프 바깥으로 던져버려야 할까. 그건 불가능하다. 그래프 바깥도 그래프의 범위니까.
“서로의 데드라인이 되어주는 사랑”
아직도 찍히지 못하고 그래프 주변을 떠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