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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r 08. 2018

영화는 수명을 늘린다

-간접 경험의 마법

작년에는 영화를 정말 많이 봤다. 한 달에 많게는 28편, 못해도 20편 내외의 영화들을 봤다.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는데, 작년에는 일단 여자친구가 없었고, 하루종일 장소를 옮겨다니며 일을 해야해서 이동시간도 많았다. 그 때문에 나는 이동하는 틈틈이 조금씩 끊어보면서 영화들을 해치울 수 있었다.


원래부터 영화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군대를 제대할 때 까지만 해도 영화를 거의 즐기지 않는 편이어서 일반적으로 필수 교양이라고 불리는 영화들조차 아는 바가 거의 없었다. 개그프로그램이나, 토크쇼를 보더라도 유명한 영화를 언급하거나 그것을 비틀어 패러디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는 챙겨본 영화가 없다보니 공감을 하기도 힘들고, 사람들하고 영화 이야기를 할 때에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런 답답함은 군대에서까지 이어졌다. 이후 전역을 하게 됐을 때. 나는 하루 종일 텅텅 빈 스케줄을 나름대로 소화하기 위해 시간 때울 궁리를 하게 되었고. 이런 참에 영화나 보자는 마음으로 네이버 평점 상위에 랭크되어있는 영화들을 하나씩 찾아보게 되었던 것이다. 워낙 본 영화들이 없다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극찬하는 영화들을 위주로 볼 수 있었는데, 대부분 흥행과 작품성을 고루 갖춘 너무나 좋은 영화들이었다.   

  

포레스트 검프, 마이너리티 리포트, 라이언일병 구하기, 올드 보이,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레옹, 이터널 션샤인, 타이타닉, 월-E 등 사람들의 인생영화들은 나에게도 인생영화가 되었다. 좋은 영화들만 볼 수 있으니 영화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유명한 영화들을 챙겨보는 동안 나는 영화라는 예술 장르에 완전히 매료되었다. 아무리 보고 또 보아도 좋은 영화들은 평생 봐도 부족할 만큼 쌓여있었다.     

내가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당연히 재미가 있고.) 영화가 내가 아닌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생 자신이라는 개인으로 태어나 개인으로 죽는다. 우리는 결코 다른 사람의 삶을 경험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우리 자신에게 결박되어 있어서 늘 나라는 1인칭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닌다.      


하지만 영화는 ‘나’라는 1인칭의 눈에 카메라 렌즈를 씌움으로써 타인이라는 세계를 경험하게 해준다. 그것이 영화가 수명을 늘린다는 내 주장의 이유다. 영화가 펼쳐지는 두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이든지 되어볼 수 있다. 세계 최고의 부자를 그리는 영화라면 내가 단순히 영화를 통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넘어 그가 누리는 쾌락의 한 장면을 함께하고, 그의 고뇌와 콤플렉스까지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그가 몰락하건 성공하건 그 흥망성쇠를 짧은 시간동안 동반하면서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느끼지 못하는 새로운 문제의식을 갖게 되고. 인식하지 못했던 세계의 고민을 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예술이 도덕적일 필요가 없다고 믿는 편이다. 예술이 도덕이라는 틀에 갇혀버리면 결국에는 악을 인식하기 힘들어지고, 그것은 비뚤어진 선을 만들거나, 무지에서 비롯된 악을 키울 수 있다. 예술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비도덕적인 이야기가 메시지를 가지고 펼쳐질 때. 그 악은 이야기의 결말과 함께 정화되고 치유될 수 있다. 이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것이다.     


영화가 아니었다면 평생 감지하지 못했을 영역의 고민을 나는 영화가 던져주는 물음으로 인해 치열하게 생각해본다. 영화 한 편을 볼 때마다 경험하게 되는 삶의 층위를 통해, 나로 태어나 나로 죽을 뻔했던 나는 삶의 밀도를 높여나간다. 타인과 타인의 삶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시각 장애인의 구걸 팻말 ‘저는 장님입니다. 도와주세요.’를 ‘봄이 오건만 저는 그것을 볼 수 없습니다.’로 바꾸는 것만으로 몇 배가 넘는 적선을 이끌어냈다는 일화처럼 이야기에는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


영화가 주는 공감과 감동의 힘에 나는 앞으로도 중력에 이끌리는 별처럼 매료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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