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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r 13. 2018

선택은 '가위바위보'

- 생각이 많은 사람

무엇인가를 선택하는 일은 마치 ‘가위바위보’같다. 오래 고민한다고 해서 항상 옳은 답이 나오지 않는다. 세상일은 아주 복잡해서, 수학문제처럼 정답과 오답으로 깔끔하게 나뉘지 않는다. 그것이 특히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한 일일 때 가치판단은 더욱더 복잡해지는 것 같다.      


‘나 주먹 낸다.’ 하고 가위바위보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주 얄미운 부류라고 할 수 있다. 거기서 순진하게 믿고 보자기를 낼 수는 없는 법인데, 상대방이 그걸 역이용해 가위를 낸다면, 나를 거의 저능아로 매도하며 놀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어설프게 가위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상대방이 정말로 주먹을 낸다면, 알려줘도 지는 멍청한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에는 차라리 주먹을 내는 편인데, 이렇게 하면 지는 확률은 조금 줄어들지만 비겼을 때의 수치심은 가위나 보자기를 낼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상대방이 ‘나 주먹 낸다.’ 하고 가위바위보를 시작할 때. 나는 머릿속으로 수많은 경우의 수를 생각하면서 수 싸움을 해보게 되는 것인데, 그 과정은 이렇다.     


주먹을 낸다고 했으니까 내가 보자기를 낼 거라고 생각하겠지? 그럼 그걸 알고 저 놈은 가위를 낼 거야. 그럼 나는 주먹을 내고, 그럼 쟤는 그것까지 한 수 더 계산해서 보자기를 낼 수도 있겠다. 그러면 내가 보자기를 내더라도 비길 수 있을 테니까. 그럼 나는 그걸 역이용해서 가위를 내볼까? 아니지. 원래대로 쟤가 주먹을 내면 어이없이 져버릴 수 있으니까 차라리 보자기를 내면? 근데 혹시 쟤가 한수만 더 생각해서 가위를 내버린다면 다시 질수도 있으니까 나는 주먹을 내자. 그런데 혹시 쟤가……     


내가 몇 수를 내다보든지 어떤 선택지를 선택하든지 결론은 가위, 바위, 보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한 보자기가 100번 꼬아 생각한 보자기와 동일할 수 있고, 아주 복잡하게 계산한 가위가 한 번 생각한 보자기보다 허탈하게 질 수도 있는 것.      


인생을 살다보면 그런 결정의 순간들이 너무나 많다. 누군가를 상처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100번이나 생각했던 말이 결국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고, 무심하게 내뱉은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깊은 위로가 될 때가 있다. 그렇다고 늘 무심하게 내뱉는 게 좋으냐 하면, 그런 경솔함으로 무지막지한 손해를 껴안은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와 약속을 잡거나, 어떤 고백의 말을 할 때. 위로를 하거나, 비판의 말을 해야할 때 그 복잡한 가위바위보 싸움으로 버거운 마음을 느낀다. 머피의 법칙마냥 오래 생각해야할 때 경솔해지고 경솔해도 될 때 괜한 심사숙고로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생각이 많다는 건 그래서 피곤한 일이다. 내가 그 복잡한 가위바위보를 놓지 못하는 건 결국 상처받지 않고, 상처주지 않기 위함인데 아주 단순하게 결정하는 사람과 후회의 양은 거의 비슷한 것 같다. 장점이 있다면 최악의 상황을 마음속으로나마 한 번 대비할 수 있다는 것 정도.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선택은 가위바위보와 같다. 이런 생각을 골똘히 해보면서 나는 여기에 나쁜 점과 좋은 점이 한 가지 씩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선택과 가위바위보 모두 필승법이 없다는 것과 어떻게 결정하든 세 번 중에 한 번 정도는 현명해진다는 것. 이 장단점 앞에서 나는 절망과 위안을 동시에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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