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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ul 31. 2018

MC 甲구라 vs 乙구라

- 김구라에 대한 개인적 바람

내 주변에 김구라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던데, TV에는 참 많이도 나온다. 한 때 완전한 마이너 감성으로 날카로운 독설을 내지르던 그는 이제 주류 중에서도 벌써 뼈가 굵은 베테랑 진행자가 되었다. 생존을 위해서 자극적인 말을 쏟아내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 그는 잃을 것이 많은 도박사처럼 신중한 플레이를 한다. 마음 편히 폐부를 찌르던 공격자에서 갑이 되어버린 김구라는 때로 하나의 방송 권력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들은 즐거워야 할 예능에서 시청자로 하여금 불쾌감을 느끼게 한다.     

부정적 측면에서 MC 김구라는 ‘내로남불’의 전형이다. 방송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그는 무시와 조롱, 비난을 일삼지만 그 자신에게는 이 중 어느 것도 용납하지 않는다. 특히 라디오스타에서 그런 양상은 두드러진다. 김구라에게 도전한 게스트는 보통 고전을 면치 못한다. 재밌게 풀 수 있는 토크나 상황임에도 ‘그게 뭐야.’ ‘에이.’ 등의 짜증 섞인 추임새로 망쳐버린다든가  잔뜩 인상 쓴 표정으로 분위기를 냉각시키기 때문이다. 겁 없는 신인의 도전에 대해서는 특별히 살벌하게 응징하는데 편집된 방송에서조차 그의 불쾌하고 언짢은 심기는 지울 수가 없어서, 설정인지 진심인지 헷갈릴 정도다. (자막이 없으면 그냥 싸우고 혼내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한) 그렇게 처참하게 보복당한 신인은 뒤늦게 김구라의 눈치를 보다가 결국에는 거의 울먹거리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인 예의조차 갖추지 않고 제멋대로인 경우도 많은데, 특히 그의 습관적인 손가락질은 무례하기 그지없어서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삿대질을 감행할 때마다 나는 채널을 확 돌려버리고 싶어진다.

너무 많은 방송을 하는 탓인지 ‘복면가왕’ 같은 프로그램에서는 지나치게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거나 생기 없는 자세로 영혼 없는 리액션을 남발하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이렇게 호불호가 분명한 방송인임에도 불구하고 롱런하며 많은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그만의 압도적인 장점도 무시할 수 없다.     

김구라는 영리한  MC임에 틀림없다. 그는 지극히 시청자 중심으로 사고한다. 그는 시청자가 무엇을 원하는 지 안다. 시청자가 패널들에게 무엇을 궁금해 하는지. 어떤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지를 정확히 짚어낸다. 여기에 방송 제작자의 관점을 겸비하고 있어서 자신의 역할뿐 아니라 프로그램 전체의 방향까지도 조율한다. 개그맨들이 게스트로 나올 때는 말미에 감동적인 장면이 나올 수 있도록 유도하고 비 방송인들이 나올 때는 의외의 모습, 이슈가 될 만한 상황을 끌어내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시청률을 위해서라면 껄끄러운 질문도 거리낌 없이 해낸다.     


썰전을 보면 이렇게 능력 있는 MC가 왜 어떤 곳에서는 말할 수 없이 비호감이 되는 것일 궁금해진다.

   

썰전에서 김구라의 진행은 대체자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하다. 그는 개그맨과 격식 있는 시사예능 사회자 사이의 지점에 있다. 유시민, 전원책의 날선 공방이 과열될 때도 부족하거나 넘치지 않게 출연자들의 비위를 맞추고 웃음으로 중화시켰다. 어려운 용어가 나오면 쉽게 풀어 말하거나 적절하게 질문을 해서 시청자들이 쉬운 설명을 듣도록 한다. 시청자들이 궁금해할만한 지점에 개입해서 가려운 곳을 긁어주기도 한다.     


김구라가 좋은 진행을 보여줄 때와 나쁜 진행을 보여줄 때의 차이는 그가 갑(甲)구라이냐 을(乙)구라이냐에 있다. 돈이 많거나, 지식이 많은 사람 앞에서 김구라는 장점은 장점대로 살리면서 단점은 줄이는 수준 높은 진행을 하지만, 후배나 동료들을 대할 때는 무례하고 교만할 뿐이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모습이 여러모로 실망스럽다.

그래서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다. 거품이라고 부를 수 없는 색깔 있는 방송인임에도 자신에게 유독 관대한 바람에 스스로에게도 시청자에게도 독이 되는 모습을 자꾸 보여주는 것 같다.      


라디오스타나 썰전에서 김구라가 빠진 그림은 아무래도 낯설다. 때로는 밉지만, 그만이 줄 수 있는 재미가 분명히 있다. 많은 개인사와 건강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책임감 있게 활동하는 그의 열정은 한편 존경스럽기도 하다. 그가 떠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단점을 줄이고 장점은 살렸으면 좋겠다. 나는 갑구라보다 을구라가 좋다. 그가 유시민과 노회찬, 전원책과 박형준을 대하는 겸손하고 유쾌한 자세로 다른 프로그램에도 임했으면 좋겠다.

유재석이 되어달라는게 아니라 무례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 모든 MC가 좋은 사람이라고 해서 문제될 것은 없다. 좋은 사람들이 다른 색깔을 내는 것이 매력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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