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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ul 17. 2018

연애와 사랑은 어쩌면 다른 것

- 집은 여행지가 될 수 없을까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여행지가 되는 일을 나는 늘 신기해한다. 열심히 돈을 모아서 파리로 떠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열심히 돈을 모아서 서울로 오는 파리 사람도 있다. 어째서 그럴까. 왜 안동 사는 친구는 찜닭을 먹지 않고, 천안 사는 친구는 호두과자를 먹지 않으며, 서울 사는 나는 한강 유람선을 타본 적이 없는가. 아마 파리에서 서울에 놀러온 아무개씨는 한강 유람선도 타보고, 남산 전망대에도 올라가봤을 터인데. 왜 나는 남산타워에도 올라가본 적이 없는가. 아마도 파리와 서울사이의 거리만큼이나 생활과 여행의 거리가 멀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동안 사랑이 아니라 연애를 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문득 무거워졌다. 생활 같은 사랑이 아니라 여행 같은 연애를 했기 때문에 여행이 생활이 되어가니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었던 건 아닐까. 더 이상 신기해보이지 않았던 것. 새로워 보이지도 않았던 것. 원래 살던 고향의 안락함이 서서히 그리워졌던 것일지도 모른다. 상대방도 그러하였는지는 모르기 때문에 싸잡아서 자조하기에는 조금 찔리고, 사실은 내가 그랬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벌써 한참 된 어느 날이다. 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10,000m에서 최초로 이승훈 선수가 금메달을 딴 직후였다. 본래 쇼트트랙 선수였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종목을 변경했다고 했다. 스피드스케이팅이나 쇼트트랙이나 그게 그거 아닌가. 다들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옆에 있던 이상화 선수가 그런 오해를 정정했다. ‘빙판에서 한다는 것만 빼면 완전히 다른 종목이나 마찬가지예요.’

육상 선수가 축구를 하는 것, 야구 선수가 배구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파격적인 종목전환이라고 했는데 나는 그 말이 참 신기했다. 그러고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니까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의 차이처럼, 언뜻 비슷해 보이는 연애와 사랑 또한 완전히 다른 종목의 스포츠는 아닐까. 빙판 위에서 빙글빙글 도는 것이 닮아보여도, 완전히 다른 훈련법과 전략이 필요하듯이 두 남녀의 '연애'는 '완벽한 사랑'과 동의어가 아니다.


나는 변화에 익숙하지 못한 운동선수처럼, 쉽게 싫증내는 여행가처럼 누군가와 만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으로 만난 에펠탑을 넋 놓고 바라보다가, 어느새 돈이 떨어져서 에펠탑 어느 구석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사람처럼 감동에 익숙해지고 무뎌졌던 사람. 신나게 위치를 바꿔가며 코너를 돌던 쇼트트랙 선수가 종목변경에 실패하고, 만 미터의 거리를 헉헉대며 달리는 것처럼 나는 결국 나만 생각하다가 좌초한 선박같다.    

 

항상 새로운 것은 신비하고, 익숙한 것은 지루해질까. 애초에 그런 단어들에 패키지처럼 포함되어 있을까. 처음에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되던 일이 개선해야 할 일들로 바뀔 때 우리의 연애는 얼마나 초라해지는지. 사랑이라는 단어 앞에서 얼마나 민망해지는지. 나는 항상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매번 스스로의 이기심과 부족함에 좌절하고 실패를 복기한다. 연애와 사랑, 사랑과 결혼. 이러한 단어들이 나의 사전에 제대로된 의미로 적힐 때 쯤이면 그때는 아마 지금보다는 임종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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