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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ul 10. 2018

나무는 무슨 색일까?

- 어려운 질문들

질문은 중요하다.     


정확한 질문이 중요하다. 잘못된 질문이 너무 많다. 겉으로는 맞는 말인데, 대답할 수 없는 질문들. 이를테면 ‘나무는 무슨 색이야?’ 같은 말이 그렇다. 나무는 무슨 색이냐고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나무 기둥이 갈색이니까 갈색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이파리의 초록색이라고 해야 하나. 이건 질문이 잘못되었기 때문인데, 괜히 답하는 사람이 길게 고민해야 한다.     


이것뿐일까. 대답을 고민하게 하는 숱한 질문들. 우리는 대답을 망설이면서 민망해하지만 그건 잘못된 질문 때문일 때가 많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질문은 ‘넌 꿈이 뭐니?’ 같은 것인데 특히 나보다 더 어른들이 물을 때 그렇다.      


나에게 꿈을 묻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꿈이 없는 사람들 같은데, 그 어려운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니 나는 여러모로 난처하다. 나의 꿈은 너무 요약해야하거나 너무 거창하거나 너무 허황되거나 없었거나 없기 때문에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여러 가지 대답들을 미리 준비해둔다. 학교에 다닐 때는 기자가 되겠다고 했다. 전공과 관련이 있고, 비교적 구체적이었으므로 어른들은 곧잘 납득하고 넘어갔다. 기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냥 편리를 위해서 그렇게 말했다.      


사실 나의 꿈은 하늘을 나는 것인데, 이런 걸 대답이라고 할 수는 없어서 아주 가까운 사람과 있을 때. 그리고 적당히 취했을 때, 취한 척 이야기한다. 나는 어떠한 거추장스러운 장비 없이 바다 위를 스치듯이 날고 싶다. 아주 빠른 속도로, 그렇게 한참이나 비행하고 싶다. 나는 높은 곳에만 올라가도 고소공포증 비슷한 아찔함을 느끼지만, 늘 스카이다이빙을 하거나 윙슈트를 입고 추락하는 모습을 상상한다.      



‘나를 사랑하냐’는 질문도 어렵다. 사랑하고 있더라도, 사랑하냐고 물을 때는 내 마음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느라고 사랑을 확인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속마음: 사랑한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물으니까 내가 너를 진짜 사랑하는 건지 헷갈리네.
나 정말 사랑하고 있는 거 맞겠지?     

혼자서 그렇게 생각한다. 대답하려면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되니까 확실하게 대답하려다보니 늦어지고 그러다가 분위기가 싸해졌던 기억. 한 번 있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날, 그리고 슬펐던 날.    

 

이런 질문들도 너무 많아서 대답하기 어렵다. 나에겐 행복했던 날도 많고, 슬펐던 날도 많은데, 그 날들은 나에게 모두 Most한 날들이어서 어느 것이 더 행복했다거나 슬펐다고 말하기 어렵다. 행복이나 슬픔은 100점 만점 점수제가 아니라 학점제와 같아서, A+이거나 C-의 등급이 있는 것이지 98점, 56점으로 세세하게 나눌 수는 없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가장’ 행복한 날이 언제였냐고 물으면, 나는 또 난처해지고. 정확히 대답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친구들에게는 자취방에서 여자친구와 보내던 기념일을 얘기하고 부모님에게는 훈련소 수료식 때를 이야기한다. 어려운 사람이 물으면 어린 시절의 어느 날을 이야기 한다.      


세상에는 어려운 질문이 정말 많다. 질문은 정확해야 하는데, 어려운 질문들은 보통 조금 잘못되어있다. 그러니까 대답을 어려워하는 것이다. 나는 잘못이 없다. 다 잘못된 질문 때문이다. 나는 늘 질문 탓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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