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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ul 05. 2018

행운은 내 편이 아니지만

- 불운도 내 편이 아니야.

특별히 운이 잘 따른다거나 하는 편은 아니다. 여행을 가더라도 날씨가 좋은 날보다는 나쁜 날들이 많았다. 작년에는 밤기차를 타고 정동진엘 갔었는데, 역시나 날씨가 흐려서 수평선부터 떠오르는 태양은 보지 못하고 어느 정도 떠오른 뒤에야 볼 수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조성된 바다부채길을 걸을 때는 설상가상 비까지 와서, 비를 맞으면서 걸었다. 두달 뒤 팔월에는 혼자 제주도를 갔었는데 그때도 여지없이 날씨가 안 좋았다. 도착부터 집에 돌아올 때까지 비는 내렸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섭지코지를 걸어서 돌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마침 뒤로 무를 수도, 앞으로 가기에도 애매한 지점에서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삼십분 정도는 한 건물에서 비를 피하고, 비가 조금 잦아든 뒤에는 맞으면서 걸었다.  

   

비 오는 가고시마 거리

월화수 삼일 동안 혼자 가고시마에 다녀왔다. 이번에도 마침 태풍과 함께였다. 비행기가 비구름을 뚫고 가는데 나는 비행기가 날갯짓을 하며 날아가는 줄 알았다. 덜컹덜컹 파닥파닥. 간헐적으로 비행기가 하강할 때마다 아랫배가 간질간질 했다. 착륙할 때도 굉장히 스펙타클했는데, 쿠다당하면서 거의 활주로와 하이파이브를 했다. 과장을 보태면 이 정도면 낮은 단계의 교통사고라도 쳐도 되겠다.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비가 많이 와서 무리하지 않고, 시내를 구경하거나 맛있는 것을 사먹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수족관에도 갔는데 돌고래 쇼가 일품이었다. 원래 가고싶었던 화산섬이나 온천, 문화재는 가볼 엄두도 못 냈다. 아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비가 온 덕에 비오는 날의 가고시마를 볼 수 있게 된 거라고. 그렇게 나를 위로하면서 걸어 다녔다.     

가고시마, 덴몬칸

사실 진짜 깨달음은 그 다음에 왔다. 행운이라는 건 흔하지 않은 확률이 나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말일 텐데, 내가 운이 기막히게 좋지 않다는 것은 어쩌면 참 다행인 일이기도 하다. 나에게만 예외로 적용되지 않는 확률 탓에 나는 간만의 여행길에서 하필이면 비를 맞게 되었지만, 그런 정직한 확률의 계산대로 온전히 살아남아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희박한 확률로 사람에게 떨어지는 번개도 피해가고 희박하게 일어나는 비행기 추락사고에서도 예외가 된 것이다.      


경품행사에서는 무언가 받아본 적이 없지만, 희박한 확률이 그렇게 올바르게 작동하는 덕분에 내가 구매하는 대부분의 제품은 멀쩡하게 온다. 그리고 사실 냉정하게 떠올려보면 날씨가 늘 나빴던 것만은 아니다. 작년 초겨울 어머니와 함께했던 온천 여행은 더할 나위없이 날씨가 참 좋았다.


나에게만 특별히 행운이 따르지도, 큰 불운이 겹치지도 않는다는 것은 세상이 나만 편애하거나 시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나를 겸손하게도 한다.

주사위가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을 판단하지 않고 굴러가듯, 그저 인생은 그런 것. 이 세상과 우리의 인생은 그저 자연한 상태로 흘러간다.  


아마 앞으로도 로또 당첨은 되지 않을 것이고, 내가 직관을 갈 때마다 두산 베어스가 승리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 된다. '아. 비가 오네.' , '오늘은 참 화창하네.' 하면서. 내가 어찌할 요량 없이 주어지는 것들은 그러려니의 마음으로 살아가면 되겠다.


거짓말 같이 그친 마지막 날
안아주고 싶은 구름

여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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