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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un 25. 2018

나의 노란색과 너의 노란색

- 우리는 같은 색을 보고 있을까.

세상에는 낯설지만 납득할 수밖에 없는 말들이 있다.


고등학교 때였나, 수학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물었다. “여러분. 자연수가 많을까요, 홀수가 많을까요.” 우리는 모두 “자연수요.” 하고 대답했지만 선생님은 “똑같아요.”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조금 벙 찐 표정으로, 에이. 어떻게 자연수가 홀수랑 똑같을 수 있어. 자연수에는 짝수도 홀수도 다 포함된 건데. 하는 말을 중얼거렸다.     

자연수와 홀수의 개수는 어떻게 셀 수 있을까. 하나씩 대응해보면 된다. 1과 1, 2와 3, 3과 5, 4와,7, 5와 9 …  

이 대응은 아무리 길어져도 절대 끝나지 않을 테고, 모든 자연수에 홀수는 짝을 이룰 수 있다. 짝수든 홀수든 무한인 거니까.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찝찝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 눈에 보이는 노란색이 너의 눈에 초록색으로 보인다고 해도, 우리가 소통하는 데에는 아무 불편함이 없을 거야.’


친구는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 네가 보고 있는 노란색이 내 기준으로는 초록색이라고 해도 우리는 모두 그 색을 ‘노랗다’라고 부르게 될 테니까, 나는 노란차를 보고 노랗다고 하고, 너는 나에겐 노란색이면서 너에겐 초록색인 그 차를 보고 노랗다고 말하겠지. 그러면 우리는 평생 다른 색을 보고 있어도 같은 색을 보고 있는 것과 같아.      

맞는 말이었다. 어떤 사람의 눈에 문제가 있어서 그 사람이 노란색과 초록색을 거꾸로 본들, 소통하는데 불편이 생길 리 없다.      

혹시 우리는 모두 다른 것을 보면서도, 같은 것을 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눈이 부시게 파란 하늘이 누군가의 눈에는 내 기준으로 보라색일 수도 있고, 빨간색일 수도 있고, 초록색일 수도 있다. 그래서 같은 책이나 영화를 보거나 같은 경험을 해도 저마다 묘하게 다른 감상을 가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사랑과 너의 사랑. 나의 아픔과 너의 아픔. 나의 믿음과 너의 믿음은 같은 이름, 다른 모습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저마다 다른 색깔로 보이는 같은 하늘을 보면서 ‘야 정말 파랗다!’라고.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는 장면을 상상하면 조금 이상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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