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평양을 헤엄치던 백지수표들에게
어릴 때는 꿈이 무슨 백지수표 같았다. 어른들이 ‘넌 커서 무얼 하고 싶니?’라고 물으면, 그냥 하고 싶은 걸 적어내면 되었다. 나는 겁도 없이 에디슨 같은 발명가나 아나운서를 하겠다고 하거나, 과거로 가는 타임머신을 만드는 과학자가 되겠다고 했다. 한 번은 삼촌이 안정적이고 돈 많이 버는 은행원이 되라기에 몹시 불쾌해서 친삼촌이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시시한 직업을 할 리가 없잖아.’ 속마음은 그랬다.
학비도 싼데 서울 시립대를 가라던 엄마의 권유에, 연세대면 몰라도 시립대는 너무하다고 생각했던 어린 나는 그에 한참 못 미치는 대학을 졸업하고 어영부영 살아간다. 그리고 어른이 된 우리는 ‘생계’라는 이름에 묶여 무엇인가로 결정되어 살아간다. 무엇이든 될 수 있었던 백지수표는 쑥쑥 자라서 각각 금액이 선명한 지폐가 되어버린다.
영화 속, ‘바다’라고 불리는 수조에는 한 때 진짜 바다 속에서 헤엄치던 생선들이 부대껴 살아가고 있다. 그 생선들은 드넓은 바다에서 유년기를 보냈을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국경도 없이 어디든 갈 수 있었던 생선들은 이제 그 좁디좁은 수조에서 숨만 쉰다. 그저 살아있을 뿐인 존재다. 그 모습은 마트에 갇혀 밥벌이를 지속하는 직원들의 모습과 닮았다. 벌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으니 버는 것으로 생활을 지속하는 삶. 매일 반복되는 일과들 사이에서 그들의 존엄은 차츰 흐려진다. 쓰레기통에 머리를 박고 몰래 폐기음식을 먹는 것에도 무감해질 정도로.
그들의 그 외로움과 고독. 쓸쓸함과 비참함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오로지 그들의 것이다. 크리스티안이 마리온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마트의 선배들은 사랑을 응원하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곁에 있어주어라.’ ‘마리온에게 상처를 주지 말아라.’
그들은 알고 있다. 생의 고단함에 치이는 사람에게는 뜨겁고 겉만 번지르르한 에로스적 사랑이 아니라, 위로와 휴식처가 필요하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크리스티안은 그녀에게 남성으로서 다가갈 때 늘 실패하고 만다. 마치 그가 몇 번이나 실패했던 인형뽑기처럼. 쉴 나무가 되어줄 마음을 가질 때 둘은 비로소 연결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지게차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어쩌면 관계의 비유일지도 모른다. 크리스티안은 학원에서도, 브루노에게서도 지게차 운전을 배운다. 학원이 관계의 이론을 가르치는 것이라면, 브루노는 관계의 실전을 가르친다. 학원에서는 지게차에 절대 사람을 태우지 말라고 말한다. 그것이 위험하기 때문에. 하지만 마트에서는 사람을 태우는 일이 허용된다. 정작 위험한 것은 지게차에 사람을 태우는 일이 아니라, 동료와 함께 하지 않는 것. 단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브루노는 몇 번이나 강조한다. ‘너무 급해. 천천히.’ 상대를 나의 타이밍에 맞추지 말라는 지혜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섬에 갇혀 살아간다. 한때 바다를 누비던 생선은 대부분 조그만 수조에 갇혀 여생을 지루한 삶의 반복이라는 형태로 보내겠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함께’ 살아내야 한다. 바다에 다시 나갈 수는 없더라도. 생계라는 이름의 외로움 속에서라도 그렇다. 그래야만 지게차의 벨트 돌아가는 소리에서 파도 소리를 찾아낼 수 있게 된다. 자칫 잊을 수도 있었던 바다를 떠올려낼 수 있다. 그리고 눈 감는 날까지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태평양을 헤엄치는 백지수표였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