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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r 11. 2020

이별이 오기도 전에 이별을 상상하는 마음

달리적 이별


연애라는 것 시작될 때마다 로맨스 영화 속에 들어간 듯 했다. 새로운 세상이 열렸고 나는 그 세계의 주인공이다. 서로가 서로라는 이름으로 사랑할 때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과, 웃음을 보면서 걷잡을 수 없이 행복했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행복한 순간의 한복판에서 나는 꼭 이별을 의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죽을 듯이 사랑할 때 이별상상할 수가 없다는데, 나는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연애를 하고 있는 와중에도 언제나 이별을 상상했다.      


영원하진 않겠지. 이별은 올 거야.
우리는 어떻게 헤어지게 될까?
이별은 어느 때 어떤 이유로 찾아오게 될까?


어설프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나의 사랑을 관찰해왔던 것 같다. 나는 나의 연애를 무슨 80대 노인이 멀찍이서 지켜보듯 관망했다. 자아가 둘로 갈라지며, 한 쪽의 나는 연애를 하고 겉늙고 염세적인 또 다른 나는 현재를 젊은 날의 ‘어떤 연애’라고 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짐을 한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 이미 그런 마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연애가 아주 오래 이어지지는 않을 거야. 언젠가는 어떤 이유로 헤어지게 되겠지.’ 그런 마음들. 결론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여봐란 듯이 언제나 이별은 왔다.     


이별을 겪고 어느 때는 미안했고, 어느 때는 분노했고, 어느 때는 부끄러웠고, 어느 때는 힘들었고, 어느 때는 의외로 아무렇지 않았다. 매번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연애를 하고 새로운 이별을 했는데, 누구를 만나든 가장 행복한 순간마다 이별을 상상했다. 그리고 끝내 이별이 왔을 때, 제일 후회됐던 건 이별을 대비했던 그 마음들이었다. 이렇게 이별이 오게 될 줄 알았으면 좀 더 행복했어야 하는 건데, 왜 나는 가장 찬란한 순간에도 이별을 상상했을까. 비겁하게 혼자 조금 남겨두었을까. 왜 대비하고, 상처가 나기도 전에 약을 발랐을까. 매번 후회를 반복했다.   

 

마음을 차분히 들여다 본 결과, 그건 내 나름대로의 방어기제라는 걸 알았다. 이별에 대한 두려움이 나도 모르게 너무 커서, 차라리 미리 예상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별이 오면, ‘우리가 어떻게 헤어져!’ 하고 소리치기보다는 ‘음. 이렇게 될 줄 몰랐던 건 아니야. 젊은 날의 이별은 누구나 겪기 마련이지.’ 그렇게 혼자서 읊조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건 나의 마음을 보호하기도 더 비참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게 비겁하고 멋없는 것이라도 나의 타고난 성격이자 기질이라서 바꿀 수 없다는 것 알게 되었다.      


매번 가벼운 연애를 반복하면서도 지구 최후의 사랑인 양 맹목적으로 몰입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처럼 항상 조금의 거리를 남겨두는 사람도 있는 것이겠지.       


파국이 오기도 전에 이별을 준비했던 어떤 연애가 끝나고 나서, 나는 이 노래를 만들었다. 노래를 만들면서 그녀와의 길지 않았던 만남을 복기했고 동시에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도 떠올렸다. 나뭇가지에 시계가 걸려 녹아내리는 모습. 그녀와의 시간과 추억들이 내 머리위로 뚝.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뜨거웠다. 따가웠다. 흠뻑 잠겨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녀를 생각보다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를 생각보다 더 사랑했다.’ 같잖은 감정들이 번갈아 나타났고, 온통 혼란스러웠다. 감정적으로 깊이 힘들었다.      


진짜 멋없어. 진짜 멋없어. 진짜 비겁하고, 어설프게 약았어. 그런 자책들이 내 주변을 맴맴 돌았다. 달을 미워해도 던져버릴 수 없는 지구처럼 나는 덕지덕지 붙은 못난 위성들을 어지럽게 쳐다보면서 한숨 쉬었다.     



달리적 이별

Salvador Dali's parting     


흐르는 강물을 만지는 순간에도

외로움에 눈물이 흘렀어

조금씩 비어가는 기차역을 보며

나는 차마 떠나지 못했어     


떠날 것을 준비하면서 시작한 사랑은

애처롭지만 품속에서도 불안하고

비오지 않는 하늘의 먹구름처럼 무서운 거야     


누군가를 만나 사랑했던 시간의 무게가

날 이미 뭉개버렸어

모든 것이 지나가버린 후에 나는

몇 걸음도 왜 이렇게 어려울까     


시계는 녹아내리고 내 머리 위로 흘러     


떠날 것을 준비하면서 시작한 사랑은

외줄 위에서 왈츠를 추듯 위태하고

빨간 명찰로 감옥을 지새우는 듯이 무서운 거야




서댐- 달리적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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