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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Dec 19. 2022

장롱 속의 보리차

승진이의 보리차를 떠올리며

초등학생 때는 학년 단위로 가장 친한 친구가 바뀌었다. 그 나이대의 우정이라는 건 별 계기나 이유없이 생겼다가 사라지기 마련이니, 승진이와도 언제 어떻게 친해졌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서로 장난기가 많았다는 것, 둘다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 민첩했다는 것, 나도 승진이도 한 학년 위의 형이 있었다는 것 같은 공통점으로 그 이유를 짐작할 뿐이다.


초등학교 4학년, 같은 반으로 만나 금세 친해진 승진이와는 거의 매일 어울려 놀았다. 집에 처음 놀러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디테일은 기억나지 않는데, 아무튼 집이 굉장히 더러웠다. 우리 아파트 단지에서 적당히 큰 평수였고, 가구가 꽉 들어찬 것도 아닌데 정돈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거실은 거실대로 방은 방대로 어질러져 있었고, 부엌 싱크대에는 항상 설거지 거리가 쌓여있었다. 친구 집에 놀러가면 대체로 집집마다 지문처럼 고유한 어떤 향기들이 있었는데, 승진이네 집은 향기라기보다는 냄새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답답하고 칙칙한 공기가 집안에 감돌았다.


승진이 집에는 두 가지 이유로 언제든지 편하게 놀러갈 수 있었다. 첫째는 아버지가 항상 늦게 퇴근하셨기 때문이고, 둘째는 어머니가 계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무렵 IMF의 여파로 이혼가정이 급속도로 늘어났기 때문에 이혼 때문인가보다 하고 지레짐작 했었는데 승진이의 어머니는 병으로 일찍 돌아가신 거였다. 집에 여전히 어머니 사진이 걸려있었는데, 승진이는 그걸 보며 가끔 울었다. 집이 더러웠던 것은 어머니의 부재가 남긴 어쩔 수 없는 풍경이었다. 가끔씩 고모가 집에 찾아와 청소를 해주고, 반찬을 해주신다 했다. 집은 승진이와 그 형 뿐, 대체로 비어있었다.  


집이 더럽다는 것 말고도, 승진이 집에는 특이한 점이 하나 더 있었다. 승진이 집에는 식수가 귀했다. 거의 모든 가정집에서 끓인 보리차를 먹던 시절이었는데, 물을 잘 끓여놓지 않아서 언제나 마실 물이 부족했다. 그래서 승진이는 언제나 나를 대접하는 의미로 물 한잔을 내어주곤 했다. 나는 별 감흥이 없었지만, 승진이에게 물 대접은 나름의 환대였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이상하지만, 그때는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승진이네 집에는 물이 없다.'는 문장이 그냥 그 집의 특성처럼 느껴졌다.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몇 달 되지 않은 집이었고, 그 형제는 고작 초등학교 4,5학년 어린애였다. 그 누구도 보리차 끓이는 법을 알려주지 않았던 약간 방치된 아이들이었으므로 발생한 풍경이었다. 순진하게 수돗물 같은 건 막연히 먹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해서, 목이 마를 때 물이 없으면 침만 꼴깍 삼켰다.


승진이보다 한 살이 많던 승연이 형은 덩치도 어마어마하고 전교에서 싸움을 거의 제일 잘하는 괴물같은 사람이었다. 왜소한 승진이를 폭력적으로 대했기 때문에, 집안 곳곳에는 벽이 파여있는 곳도 많았다. 승진이를 잡아 던져서 생긴 것이었다. 문고리도 박살난 것이 있었는데, 승진이가 방문을 잠그면 발로 차거나 물건을 던져서 문을 부숴 열었기 때문이었다. 자전거를 타고 지하철역 계단을 그대로 내려간다거나, 큰 담벼락이나 지붕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다닌다는 등 기이한 소문이 항상 떠돌았다. 그런 승연이 형의 귀가는 언제나 소름이 돋고 긴장이 가득한 순간이었다.


"야 홍승진 물 내놔"


승진이와 온라인 게임을 하며 깔깔대고 있던 어느날 승연이 형이 집으로 '들이닥쳤다.' 자기 집으로 돌아온 것이니 '들이닥친' 것이라는 표현이 좀 웃기지만, 나와 승진이에게는 늘 '들이닥친' 기분이었다. 승연이 형은 들어오자 마자 승진이에게 물을 내놓으라 했고, 승진이는 물이 없다고 했다. "너 물 있는 거 다 알아 내놔" 형은 승진이 멱살을 잡아다가 안쪽 자기 방으로 끌고 갔다. 벽이 움푹 파인 곳이 가장 많은 방이었다. 침대에 거칠게 승진이를 잡아던진 형은 무차별적으로 발길질을 하기 시작했다. 승진이는 거의 괴성에 가까운 울음을 터뜨리며 악을 질러댔다. "물 내놔"와 "물 없어"가 번갈아 들리던 그 집에서 나는 숨죽이고 가만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의 실랑이 후, 승연이 형은 내가 있는 컴퓨터 방으로 씩씩대며 들어왔다. 그래도 손님이었으니 나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형은 나를 가볍게 밀치며 컴퓨터 앞에 앉았고, 온라인 게임 하나를 켜고는 말했다. "나 돌아올때까지 홍승진한테 레벨 30 만들어 놓으라고 해 알았어?" 형은 씩씩대며 집밖으로 나갔다.


승진이는 침대에 엎드려 엉엉 울고 있었다. 머리가 잔뜩 헝클어진 채로. 나는 위로의 말도 못하고 괜찮냐고만 계속 물었다. 승진이는 몇 분 더 엎드려 울더니 고개를 들고 일어섰다. 뻘개진 두 눈으로 나를 잠깐 쳐다보던 승진이는 별 말 없이 안방으로 들어가 무엇을 들고 나왔다. 승진이 손에는 플라스틱 통에 담긴 보리차가 들려 있었다.


"이럴 줄 알고 장롱에 숨겨놨지" 승진이는 유리잔에 보리차를 한잔 따라 주며 말했다. 우리는 물을 나눠 마시며 웃었다. 보리차는 미지근했고, 플라스틱 통 냄새도 배어서 조금 쿰쿰했지만 그래도 참 맛있었다.


몇 년에 한 번씩 승진이가 보고 싶다. 승진이는 머지않아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그 이후로는 소식도 끊겼다. 뒤늦게 깨달은 사실은 내가 그 귀한 물을 얻어마시면서도 고맙다는 말을 못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못하고 이렇게 영영 헤어진 것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고, 여전히 가슴 한켠이 섭섭하다. 그 당시 승진이에게 보리차가 무엇이었는지 알기에, 이 추억은 떠올릴 수록, 떠올릴 때마다 소중해진다.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승진이에게 이 글에서나마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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