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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r 13. 2020

그때 하필 코로나가...

개연성없는 행운이 따르길

향후 30년간, 혹은 그 이상. “그때 하필 코로나가...”라는 이름의 망령이 우리나라를 떠돌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무슨 영화 속에서 사는 것 같다. 아침에 지하철을 타고 주변을 돌아보면 흔해빠진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모두 마스크를 쓰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영화 설정이라고 치면 ‘무서운 전염병이 도시를 휩쓸고, 일상이 마비된다.’는 정말 흔한 클리셰인데, 놀랍게도 현실이다.     


죽기 좋은 타이밍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다. 우리는 언제 기꺼이 죽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죽기 딱 좋은 시기란 없다. 삶의 연속성 때문이다. 우리는 바둑판에 바둑알을 번갈아 놓듯 끊어진 사건 속에 살지 않고, 끊임없이 연결되면서 상호작용하는 시간 속에서 살아간다. 고등학교든 대학이든 학 하면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학교에 보내고, 노후를 준비하고, 은퇴를 하고... 일반적이라고 알려진 이런 수순 속에서 우리의 죽음이 알맞게 껴들어갈 자리는 없다.     


은퇴 후라면 어떨까? 은퇴를 하더라도 우리는 충분히 젊고, 수많은 관계들은 이어진다. 개인적인 욕심 또한 생생할 것이다. 화초를 키우는 사람은 아무리 늙어도 죽을 수 없다는 말을 떠올린다. 자식이 있다면 자식에게도 졸업과 취직, 결혼 같은 사건들이 진행되고 있을 테고 ‘아이 취직할 때까지만...’ ‘상견례까지만...결혼식 입장까지만...’ ‘손주 얼굴만 보면...’과 같은 욕심이 삶의 미련을 쉽사리 놓지 못하게 할 것이다.


죽음뿐만이 아니라 재해나 불의의 사고, 이번 코로나같은 전염병을 맞이하기에도 적절한 시기란 없다. 우리 삶의 모든 순간은 소중하다. 우리는 죽기 직전까지 결정되지 않는 존재이다. 카리브해 연안의 한가로운 어부가 아닌 이상 각자의 시기마다 우리에게는 늘 주어진 과제가 있다. (실은 느긋해보이는 그 어부에게도.) 선택을 앞두고 있거나, 실행하고 있다.  코로나19는 별안간 지붕에 박힌 운석처럼 우리의 삶에 침투해서 중요한 현재를 파괴하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 말그대로 생사의 기로에 서있다. 당장 죽을 지경은 아니라도 심각한 피해를 입는 사람은 그보다 더 많고, 삶의 어느 부분이 고장난 사람은 그보다도 훨씬 많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코로나로부터 무관한 사람은 거의 한 명도 없다고 해도 무방다.     


우리 외할머니는 6.25전쟁이 발발한지 한참이 지나서야 그 소식을 들었고, 피난이라도 가야할까싶어 미숫가루를 볶고있을 때 전쟁이 끝났다는 소식을 들으셨다고 했다. 그런 외할머니도 코로나만큼은 실시간으로 걱정하셔야 한다. 하물며 전쟁에도 무관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코로나에는 예외가 없다. 심각한 문제다.     


이로 인해 뭉개진 삶의 부분들 나비효과를 일으켜 무수한 미래를 낳을 것이라는 것도 떠올린다. 이런 생각들은 예측도 아닌, 너무나 선명한 기정사실이 되어버렸다. 이후로 그려질 레파토리가 선하다.     


몇 년을 준비해서 개업을 했는데 말이예요. 그때 하필 코로나가...
그녀를 만나려고 비자까지 받아놨는데, 그때 하필 코로나가...
해외취업만 바라보고 합격까지 받아놨는데요. 그때 하필 코로나가...
빚 다 갚아서 좋은 날이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죠. 누가 알았겠어요. 그때 하필 코로나가...
치료 다 받고 완치라고 했어요. 간병하시는 분이 콜록거리시더니. 맞아요. 신천지셨고요. 아버지께 그때 하필 코로나가...
유망하다고 해서 테슬라에 전재산을 박아넣었죠. 천장까지 뚫을 기세로 오르더라고요. 빚까지 내서 추격매수했는데. 그때 하필 코로나가...
삼수했거든요. 학교 입학해서 캠퍼스 생활 좀 즐겨보나 했는데요. 그때 하필 코로나가...
회사 다니면서 사업 아이템 준비해서 보란 듯이 퇴사했는데요, 그때 하필 코로나가...
공무원 준비에 다 걸었거든요. 컨디션도 좋았는데, 그때 하필 코로나가... 시험 앞두고 격리가 웬말입니까.
제 첫 연애가 2020년이에요. 한창 알콩달콩 하고 싶은 거 많을 때였는데 그때 하필 코로나가...
대금 다 치르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때 하필 코로나가... 물건은 받지도 못하고 돈만 날렸죠.      


이밖에도 얼마나 많은 사연들이 구구절절 쏟아져 나올 것인가. 우리는 모두 결정적인 어느 순간을 살고 있는데. 코로나19가 다 망치고 있다. 가끔 신천지나 바이러스 명칭에 대한 논쟁들이 시끌시끌하게 삐져나올 때. 어느 정도 공감은 하면서도. 그걸 우한 폐렴이라고 부르든,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부르든, 코로나 19라고 부르든... '이제와서 무슨 의미가 있나.' 우리의 어떤 감정도 보상되지 않을 것이라는 허탈함만 남다.      


코로나19가 만들고 있는 이 이야기는 사건의 한복판을 지나고 있을까 아니면 아직 프롤로그밖에 열리지 않은 것일까.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은 개인으로서도 우울하고 답답다. 앞으로 몇 십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온통 바꿔놓을지도 모르는 전염병 속에서, 혼란스러운 감정만 가득해진다.


이 재난 속에서 부디 나를 비롯해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얼토당토않은, 개연성이 하나도 없는. 그런 운이 따르기를 막연하게 바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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