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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r 17. 2020

신천지와 기타리스트

내 삶의 어떤 기억

고등학교 1학년 때 기타를 처음 배웠다. 기본적인 코드들을 익히게 되었을 즈음의 나는 기타를 칠 줄 안다는 사실이 너무나 뿌듯했다. 지금은 부끄러워 상상도 하기 싫지만, 그래서 나는 괜히 기타케이스를 등에 메고 걸어 다닌 적도 많았다. 자랑을 하고 싶어서 괜히 지갑에 피크를 넣어다니다가, 동전을 꺼내면서 실수인 척 피크를 흘리기도 했다. 그러면 친구들이 ‘야 너 기타칠 줄 알아?’ 했고, 겸연쩍은 척, ‘어. 조금.’ 은근슬자랑했다. 2007년이었다.


나는 원래 노래는 좀 잘해서 나름대로 평판이 있었다. 기타까지 배운다고 소문을 내놓고 나니 자연스럽게 노래나 밴드, 기타, 드럼 같은 것을 좋아하는 친구들하고 어울리게 되었다. 사실 코드만 간신히 잡으면서 쉬운 노래들을 몇 개 연주할 수 있는 정도였는데도 약간의 말주변과, 밴드부였던 형에게 주워들은 교양지식을 가지고 그들과 점심시간에 밴드음악 얘기를 하곤 했다. 서로 노래 추천하고 듣고, 몰라도 아는 척하고, 뮤즈나 그린데이 듣는다고 하면 무시하고, 라디오헤드나 드림씨어터, 트래비스 듣는다고 하면 조금 쳐줬다. (사실 나는 그때 라디오헤드보다 그린데이를 좋아했지만)


“서댐아. 기타를 공짜로 알려주는 분이 있대.”


2학기가 거의 끝나갈 즈음 아침 조회시간이 끝나고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용선이가 말을 걸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기타에 입문한 친구였다. ‘너도 배워? 나도 배우는데!’ 우리는 그런 식으로 친해졌었다. 화정에 무료로 기타를 가르쳐주는 곳이 있으니 같이 가자는 말이었다. 솔깃했다.


“기타 레슨은 한 시간인데, 그 전에 성경공부를 잠깐 해야 한대”


친구도 교회를 다니고 있었고, 그때는 나도 교회를 다니고 있었으니 딱히 부담스러운 제안은 아니었다. 겸사겸사 듣지 뭐. 했다. 제목에서 풍기는 뉘앙스처럼. 그 성경공부의 주체는 신천지였다.


화정에 있는 어느 사무실 같은 공간에 들어가자 기타리스트 선생님이 앉아계셨다. 얼굴은 그냥저냥 멀쩡하고 깔끔했다. 그런데 분위기가 묘하게 오타쿠스럽다고 해야하나. 30대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좋게 말하면 권위의식이 없고 나쁘게 말하면 조금 철없고 가벼운 이미지였다. 그는 자신을 전도사라고 소개했다. 적극적인 쪽은 옆에서 밝게 웃고 있던 두 명의 형 누나들이었는데 둘 다 항공대 학생이라고 했다. 형도 나름 잘생겼지만 무엇보다 누나가 특히 예뻤다. 내 기억 속에는 통통한 구혜선으로 남아있다. 나는 그 누나에게 성경공부를 받기로 했다.


신천지라고 해도 기본적으로는 개신교의 색깔을 많이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배운 그날의 성경공부도 교회에서 배우던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기억을 짜내도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데,


“서댐이는 싫어하는 음식이 뭐야?”
“저... 고추 장아찌요.”
“그러면 누가 서댐이한테 고추장아찌를 억지로 먹이면 기분이 좋을까?”


뭐 이런 얘기를 했던 것만은 기억난다. 저 대사가 어떤 성경 내용으로 연관되었는지 지금은 잊어버렸다.


전도사라는 사람은 특이했다. 그 사람은 종교적인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기타만 치는 사람이었다. 여러 방면에 호기심이 많던 나는 신학적인 질문도 한 적이 있었는데, 무슨 동네 PC방에 같이 놀러간 교회 형처럼 ‘그런 건 잘 모르겠다.’하고는 기타만 알려줬던 것이 특이했다. 열의 가득했던 항공대 커플들의 포교활동에 컨텐츠를 맞춰주는 바지 사장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그날로부터 한 달 정도 매주 한 두 번씩 서대문과 화정을 왕복했다. 거기서 로망스 치는 법을 배웠고, 스트로크 하는 법, 하이코드 잡는 법에 대해서도 몇 가지 배웠다. 크게 실력이 늘지도, 그렇다고 영 효과가 없지도 않은 채로 수업은 끝났다. 공짜여서 간절함도 없었던 데다가 귀찮기도 해서 그냥 발길을 끊은 것이었다.


친구는 나보다 조금 더 오래 거길 다녔고, 후에 신천지라는 것을 알게 돼서 나에게 전했다. “서댐아 거기 아무래도 이상해. 신천지라는데?“ 나는 그 말을 듣고 경악했다. 그때만 해도 교회를 충실히 다니고 있던 나에게 ‘이단’의 이미지는 머리에 뿔을 달고 다니는 악마와도 비슷했다. 그들은 사람 좋은 웃음으로 신실한 교인들을 속이고, 등을 쳐먹고, 망가뜨린다고 했었는데. 생각과는 달랐다. 적당히 평범했다.


그때의 전도사는 블로그도 운영하고 있었다. 유튜브도 없던 시절에 네이버에서 일렉기타를 검색하면 상위에 노출되던 곳이었다. 이번 코로나 사태로 신천지가 부각된 후, 그분이 생각나서 아이디를 검색해 보았더니 여전히 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셨고, 전문적인 기타 튜닝, 이펙터 개조, 제작 등에 대한 포스트가 집요할 정도로 쌓여있었다. 무료 강좌도 드문드문 열고, 레슨도 하는 모양이었다. (놀랍게도 2007년의 내 사진이 아직 구석에 남아있었다.)


코로나 국면에서 언론을 통해 신천지에 관한 소식들이 쏟아질 때마다, 나는 그때의 신천지 기타리스트와 항공대 형 누나들을 떠올린다. 기타를 치는 내 손과, 기타연주에 신천지와의 인연이 어느 정도는 남아있다는 사실을 신기해한다. 그렇게 열정적으로 성경지식을 알려주던 그녀의 신념과, 전도사이면서 여전히 기타에만 빠져 사는 특이한 사람을 생각한다.


살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인연이 나와 얽혀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때가 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그때의 기억은 이처럼 별안간에 되살아다. 무수하게 얽혀있는 인연의 타래가 머릿속으로 언뜻 그려졌다. 나는 신천지 기타리스트에게 배웠던 로망스를 치면서, 또 그에게 배웠던 그린데이의 ‘Holiday’ 기타리프나, 딱 여덟 마디만 연주할 수 있는 ‘Stairway to heaven’의 도입부를 연주하면서, 내가 어느 순간 사이비종교인과도 닿아있었던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리고 오늘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끝으로 그때의 기억을 더듬더듬 되살려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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