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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y 23. 2020

피크를 잘 잃어버림

- 사색

피크의 삶은 어찌 보면 참 고단하다. 온몸이 내내 기타 줄에 긁히다가 버려진다. 정확히 말하면, 버려진다기보다는 부서진다. 부서지지 않은 것들은 어디론가 사라진다. 피크에게는 부서지거나 사라지거나. 꼭 둘 중 하나의 결말이 있다.     


중학생과 고등학생 사이의 겨울, 기타를 처음 배웠다. 코드를 잡고 피크 쥔 손을 내지르면 손에는 둔탁한 저항감이 찌릿하게 전해지고, 선명한 소리들이 웅웅- 공간을 가득 채웠다. 당시의 나는 기타를 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하고 뿌듯했다. 그즈음에는 매일같이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면서 지냈다.      


서툰 기술로 기타를 치다 보면 줄이 끊어지거나 피크가 부서지기 십상이었다. 여분의 피크가 방안에 꼭 몇 개씩은 굴러다니곤 했는데 그마저도 보이지 않을 무렵이면, 형이나 친구하고 낙원상가로 쇼핑을 갔다. 우리는 고작 몇 천 원을 쥐고 낙원상가에 가서 기타 구경을 하다가(괜히 앰프 가격도 물어보고) 피크만 몇 개 사서 돌아왔다. 살 수 있는 건 그게 다였다. 가벼운 주머니 사정에도 여러 개를 잃어버리면 어렵지 않게 여러 개를 살 수 있었다. 피크가 딱 그 정도 값어치였다.     


그건 피크의 매력이기도 했다. 한 봉지에 원 짜리 피크는 한 줌이나 들어있어서 없어지면 없어지는 대로 두고 써도 상관이 없었다. 어느 정도 잃어버리면 집안 구석구석에서 피크가 출몰해서 또 그걸 찾아서 썼다. 한참이나 쓸 수 있었다. 쉽게 잃어버리고 또 쉽게 찾고.      


그런데 어떤 피크는 비싸지도 않은 것이 유독 정이 갔다. 그걸 찾으려고 집을 온통 뒤지게도 했다. 나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잃어버린 자주색 피크를 지금도 아쉬워한다. 그 피크는 되게 말랑말랑하고 손에서 잘 미끄러지지도 않았는데, 또 쉽게 깨지거나 찢어지지도 않았다. 부드럽게 줄에서 미끄러지는 촉감이 매력 있었다. 그 피크만 몇 달씩 썼는데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졌다. 자아가 있어서 가출이라도 한 것처럼 아무리 찾아도 나오지 않았다. 영화 <니모를 찾아서>를 뒤늦게 보았을 때, 나는 애중히 여기던 그 피크를 떠올렸다.      


피크야 많으니까, 그게 없다고 기타를 못 치는 건 아니었다. 나는 금세 다른 피크에 적응해서 연주를 했다. 자주색 피크 다음으로는 심슨 피크에 정을 붙였다. 호머 심슨이 그려진 버전을 제일 좋아했는데, 잘 깨지는 편이었다. 그다음엔 조금 딱딱한 던롭 피크를 썼다. 던롭 피크는 어떤 방식으로 쳐도 끄트머리가 부드럽게, 일정하게 닳았다.(그래서 조금 비쌌지만) 그리고 그 다음, 다음에도 무슨무슨 피크를 썼다. 어느샌가부터는 잘 기억이 안 난다.     


피크에 사람처럼 정이 가는 날이 있는가 하면, 사람이 피크처럼 보이는 날도 있었다. 잃어버린 피크가 방 한구석 어디에서 발견되듯 되돌아오는 인연과, 괜히 마음이 가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특히 연애는 피크처럼, 부서지거나 사라지거나. 꼭 둘 중 하나의 결말이 있었다. 온 마음을 다해도 회복할 수 없는 관계도 있었다.      


피크가 사람처럼 보이는 그런 날은 유독 성의를 다해 피크를 챙기면서, 피크를 잘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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