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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y 30. 2020

승웅이를 보내고

- 다정했던 승웅이를 떠올리며

29일 아침 승웅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2015년 봄과 여름, 나는 승웅이와 함께 놀이공원에서 일을 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동갑인데다가 마음도 잘 맞아 금방 친해졌다.      


승웅이는 다정했다. 여자에게 다정한 남자는 많이 봐 왔지만, 남자에게 그렇게 다정한 친구는 처음이었다. 승웅이는 남자에게도 마치 썸타는 여자를 대하는 것처럼 했다. 그런 모습이 처음에는 조금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금세 적응이 되었고 나도 그에게 마찬가지로 대했다. 나는 그 친구로 말미암아 남자가 남자를 대할 때에도 다정함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 점을 닮기 위해서 나름대로 신경 쓴 기억도 있다. 아직도 나의 행동과 말투, 억양에는 승웅이의 흔적이 조금은 남아있다.      


승웅이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때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오래 되었다. 나는 그에게 뿐만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연락을 잘 안하는 편인데, 그건 가장 작은 인간관계를 지향하는 나의 답답한 성격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내 주변의 사람들이 내 필요보다, 내 그릇보다 많다고 느낀다. 그래서 먼저 약속을 잡는 일이 거의 없다. 늘 혼자 다니는 것을 좋아하는데도, 자꾸만 사람 만날 일이 생겨서 피곤해 하는 편이다. ‘그러니까, 너는 가만히 있는데 주변에서 자꾸 놀자고 한다는 거지? 자랑도 참 고상하게 하네.’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아무튼 승웅이와도 접점이 없어지고 시간이 지난 후로는 연락을 안 하고 살았다. 내 기억에 2016년부터는 흔한 카톡 안부인사도 잘 안했던 것 같다. 나도 그럭저럭 잘 살고 있으니, 아마 그 친구도 그럭저럭 잘 살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적당히 따뜻한 기억을 가지고 살아갔던 것이다. 언제 만나도 어색하지 않겠다는 확신은 있었으나,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수많은 인간관계처럼, 승웅이와의 인연도 흐려지고 있다고 느꼈다.  

    

소식을 듣자마자 우리가 함께 한 강릉 여행을 떠올렸다. 각자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고도 몇 달이나 지난 후, 조금 뜬금없이 엉겁결에 확정된 여행이었다. 내가 승웅이와, 같이 일하던 동생 하나까지 해서 함께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당시 만나던 여자친구가 “오빠, 승웅 오빠랑 그렇게 친했었나?”하고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그때 “응 그럼. 친하지.”하고 대답했었는데, 사실은 대답하면서 내심, ‘그렇게까지 친한 건 아닌데.’ 라고 생각했었다. 그와의 여행은 아주 친해서가 아니라, 늘 좋은 마음이 통하던 친구였기 때문에 마다할 이유가 없어서 성사된 것이었다. 실제로 그와 함께 했던 짧은 여행은 아직도 내가 누군가와 함께 한 몇 안 되는 여행 중의 하나로 남아있다.     


기억이 흐리지만, 수요미식회에 나왔던 두부집에서 얼큰한 두부국을 먹었던 것, 날씨가 흐려 조금은 기운이 빠졌던 것, 바다에 첨벙 뛰어들어 미역을 손으로 건졌던 것. 내가 샤워하는 모습을 바깥 창문에서 자꾸 훔쳐보던 것, 옷 갈아 입을 때 서로 알몸을 찍으면서 장난으로 협박하던 것. 고기를 사러 갔다가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갑자기 비가 와서 뛰었던 것. 그리고 함께 사진을 찍었던 것들을 여전히 떠올릴 수 있었다.     


장례식장에는 당연히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같이 여행을 떠난 상대는 흔치 않고, 그 기억이 무겁게 남아있으며, 그에게 배운 다정함의 영향을 종종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무엇보다 설명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죄책감과, 미안함을 해결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영정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짧게 하고 나오리라 생각했다.     


퇴근 후 세수를 다시 하고, 옷을 갈아입고, 연신내에서 강동까지 한 시간 정도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나는 승웅이와의 모든 기억을 떠올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와의 추억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머리를 싸매도 떠오르는 사건들이 많지 않았다. 장난끼 많던 그의 표정만 중복해서 떠올랐다. 그리고나서는 승웅이의 죽음이 너무 슬프지 않아서 슬프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너무 슬픈 죽음과 하나도 슬프지 않은 죽음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슬프고 싶은데도 아주 슬프지는 않아서 미안한 죽음도 있는 것 같았다.      


강동성심병원 장례식장에서 승웅이를 만났다. 영정사진은 생전에 병원에서 찍은 셀카였다. 약간 위에서 내려찍어 영정사진 같지 않았다. 여전한 표정이 죽음과 무관해서 짠했다. 절을 하면서 속으로 준비한 인사를 했다. ‘잘 가 승웅아.’ 크게 슬프지는 않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도 그랬다. 몇 년씩이나 연락을 안 하고 살았는데 이제 와서 슬프다고 우는 것도 가식이겠지. 담담했다. 상주는 친형이었는데 덩치는 훨씬 컸지만 너무 닮아서 조금 놀랐다. 맞절을 하고, 마주 서서 눈을 마주쳤다. 서로 마스크를 썼고, 말도 하지 않았으나 분위기상 어떤 인연으로 오게 되었느냐는 눈빛임을 알 수 있었다.


“예전에 같이 롯데월드”     


까지 말하고 목이 메었다. 눈에 눈물이 순식간에 차올랐다. 말을 더 잇지 못하고 꾸벅 인사를 하고 그냥 나왔다. 잠깐 앉아 있다가, 딱히 밥을 먹고 싶지도, 술을 먹고 싶지도 않아서 다시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그래도 마지막 인사는 했다는 생각에 무겁던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긴 시간을 들여 집으로 돌아왔다.     


5년 전, 함께 떠난 여행에서 우리는 바다를 배경으로 같이 사진을 찍기로 했다. 어떤 포즈로 찍을까.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셋이서 같이 하늘을 가리키기로 하고 찍었다. 이제 와서는 하늘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슬프게 느껴져서, 땅을 가리키며 찍을 걸 그랬나. 그런 생각도 잠깐 했다.     


그가 조금 더 오래, 이 땅에서 좋은 것들을 경험하지 못하고 떠나서 참 안타깝다. 생각해보니 나에게 단 한 번의 상처도, 분노도, 아픔도 남기지 않았던 좋은 친구였다. 고통 없는 곳에서 마저 행복했으면 좋겠다.


2015/10/12 강릉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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