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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Sep 12. 2020

세이렌의 노래

- 귀의 감각

목욕탕이 내 최초의 바다였다. 나는 심지어 거기서 익사할 뻔도 했다. 다섯 살쯤이던 때였고, 여탕이었는데, 의자처럼 앉는 욕탕 안쪽 가장자리에서 살금살금 놀다가 발을 헛디뎠다. 어른의 기준에서는 그저 무릎께의 목욕탕이었지만 나에게는 심해였다. 나는 그 깜깜하고 깊은 곳에서 허우적거렸다. 코와 입으로 뜨거운 물이 따갑게 침투했고, 죽음이 코앞까지 찾아온 듯 했다. 내 미약한 호흡은 방울의 형태로 물속을 탈출하고 있었지만 나는 반대로 가라앉는 중이었다. 손끝이 딱딱하고 까칠한 돌바닥에 닿았다. 숨이 넘어갈 지경, 발목이 뻐근해졌고, 몸이 억지로 끌어올려졌다. 


푸악. 하는 소리와 함께 세상의 소리가 바뀌었다. 무엇이라 표현할 수 없지만 아무튼 ‘열린’ 소리였다. 세상에 공백의 공간이 있고, 그 사이를 소리들이 시원하게 왕복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심해에서 허우적거릴 때는 물에 손바닥이 있는 것 같았다. 물이 묵직한 손으로 내 귀를 감싸는 것 같았다. 그 기분 나쁜 감각에서 탈출했을 때 나는 비로소 안도했다. 곧 한바탕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를 위태롭게 무단횡단하고 있었지만, 욕탕 안의 아줌마들이 보기에 그건 작은 해프닝 꺼리도 아니었다. 내 발목을 잡아 들어 올린 아줌마는 나를 익숙하게 안아서 엄마 쪽으로 내려주었다. 엄마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옆 사람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목욕탕의 습기, 높이 달린 작고 불투명한 창문, 거기서 맑게 들이치는 햇빛, 샤워를 하던 어떤 누나의 뒷모습, 나에게는 조금 뜨겁게 느껴졌던 물의 온도, 천정에 맺혀 있다가 이따금 아래로 떨어지던 물방울, 목욕탕 비누 냄새, 문이 열릴 때마다 바깥에서 순식간에 공급되던 찬바람까지 그 순간의 모든 것들이 선명하게 기억나지만 가장 강렬하게 남은 것은 물속의 먹먹함과, 바깥으로 나올 때의 트인 소리. 바로 양극단에 걸친 그 귀의 감각이었다.


물속에서 가장 선명해지는 건 의외로 청각이다. 대부분의 경우 물속에서 시각이란 보잘 것이 없다. 물안경을 끼면 불편하게 왜곡되고, 안경 없이는 뻑뻑하고 따가워 차라리 눈을 감게 된다. 일상을 압도하는 시각이 사라진 물속에서 가장 큰 변화는 그래서 귀로 온다. 아주 두껍고 무거운 막이 씐다는 기분. 그리고 뭍에서는 좀처럼 들을 수 없는 수중세계의 소리. 온통 그것들로 가득해진다. 그걸 어떻게 묘사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리스 신화의 영웅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바다를 지나기 위해 부하들의 귀를 모두 밀랍으로 막고, 본인은 기둥에 묶인다. 세이렌의 노랫소리는 치명적이라서 듣게 되면 누구라도 아름다운 목소리에 홀려 바다로 몸을 던지게 되고, 곧 배가 암초에 충돌해서 난파되리란 것을 오디세우스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한명은 귀를 열어두어야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감지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는 기둥에 자신을 묶도록 했다. 신화에서는 기지를 발휘한 오디세우스의 배가 무사히 그 위험한 바다를 통과하게 된다.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듣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오디세우스가 유일했다. 


나는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들어볼 수 없지만 이따금 그런 생각은 해보곤 한다. 물에 빠져 죽다 살아나온 모든 사람들이 죽음의 경계에서 들었을 물속의 그 설명할 수 없는 소리가, 어쩌면 세이렌의 노랫소리처럼 아찔하고, 끔찍하며, 또 달콤하고 신비롭게 들렸을지도 모르겠다는 것. 


우리는 물속의 소리를 정확하게 묘사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소리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잘 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누구라도 인생에서 한번쯤은 물속에 가만히 잠겨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귀를 먹먹하게 감싸는 느낌과 멀리서 울리는 날카로운 금속성의 소리. 고르륵 거리는 물방울의 소리. 위치를 알 수 없는 곳에서 들리는 주파수와, 머리 깊숙한 곳으로 전해지는 어떤 파동을 천천히 느껴보았을 것이다. 이따금씩 숨을 뱉으며 아아아- 소리도 질러보았을 것이고, 그 소리가 멀리 퍼지기는커녕 목젖에서 힘없이 울리다 사라지는 것도 경험해보았을 것이다. 나는 목욕탕에서, 수영장에서, 저수지에서, 바다에서 적어도 한번씩은 죽을 고비를 넘겨보았다. 그때마다 잊을 수 없는 것은 물속에 잠겨 내 귀를 온통 잠식했던 그 정체불명의 소리들이다. 스타벅스 로고에서 알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그 꺼림칙한 여인이 그때마다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내 귀에 입술을 대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종종 생각해본다. 물속에서 가장 먼저 깨어나는 것은 청각이고. 사람은 익사 직전 모두들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듣게 된다고. 불가해한 물속의 소리가 세이렌과 노래의 정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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