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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Sep 15. 2020

코끼리를 피하면서

- 일

출근길, 오르막길에서 오토바이에 인쇄물을 싣고 달리는 노동자를 보았다. 걸어서 언덕을 올라가는 나와 벌써부터 골목을 누비는 그가 모두 고단해보였다. 한때는 한국 영화의 메카와도 같은 곳이었다는데, 이제 충무로에서 영화사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대한극장만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옛 영광을 증거하고 있다. 감독이나 배우, 제작자가 사라진 충무로에서 이 동네의 정체성은 오히려 인쇄소에 있다고, 나는 자주 생각한다.


오랜만에 해가 들어 쨍한 아침 날씨라는 것을 제외하면 매일 보는 풍경이야 새로울 것도 없었다. 나는 언제나처럼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었고, 음악이 가득한 세상에서 인쇄소 오토바이들은 드문드문 돌아다녔다. 차들이 내 옆을 지나갈 때마다 벽 쪽으로 바짝 붙었다. 직장에 도착할 무렵까지 몇 대의 차를 피했고, 마지막으로 내 옆을 스친 것은 지게차였다. 평온한 속도로 스쳐 가는데, 그날따라 그쪽으로 시선이 멈추었다. 지게차 앞으로 성큼 뻗은 쇳덩어리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찾아보니 지게차 앞에 달려서 물건을 옮길 수 있게 하는 쇠막대는 ‘포크’라고 부른다고 한다. 포크는 하루에도 수 십 번 혹은 수 백 번을 파레트의 홈에 들어갔다 나왔다 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코끼리의 상아를 닮은 지게차의 포크는, 그 부지런한 노동의 과정 때문인지 상아만큼 반들반들했다. 유려하게 닳아 반질반질한 지게차의 상아. 내가 왜 저걸 한 번도 못 봤을까, 새삼스러웠다.


굳이 생활의 달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숙련된 노동은 예술과 분간하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어릴 적 우리 동네의 꽈배기 가게는 방송에도 여러 번 나온 집이었는데, 버스 정류장에 서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사장님이 꽈배기 만드는 모습을 쳐다보았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가 그렇게 했다. 우아하고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꽈배기를 만드는 모습, 거기서 눈을 떼기는 어려웠다. 그건 일종의 버스킹이었다. 길거리 연주에는 기타케이스에 돈을 넣어 성의를 표하지만, 거기서는 꽈배기를 구매하는 것으로 대신한다는 것이 조금 달랐을 뿐이다.


시험지를 사람 수대로 정확하게 골라내시던 담임선생님의 손놀림, 광장시장에서 한 번에 수십 개의 전을 능란하게 뒤집던 사장님의 동작, 남아프리카 축구선수들의 당일 엔트리를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읽어내던 스포츠캐스터의 발음, 액체상태의 유리를 긴 쇠막대로 불면서 백조로 만들어내던 공예사의 기술을 보고 있노라면 경지에 오른 자들에게는 어떤 존경심마저 들었다. 부품처럼 동작하지 않는 사람들. 그 나름대로 굳건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늘 예술가의 일면을 찾아내곤 했다.


지게차의 포크를 보면서 느꼈던 것은 바로 그 존경심이었을까? 짐작컨대 아니었다. 내가 그 반들반들한 지게차의 상아를 보며 느낀 아름다움은, 경지에 오른 수준 높은 기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매일 꾸준히 반복되었을 고단함과 성실함에서 왔다. 삶을 지탱하기 위한 지겨운 반복이 저렇게 아름답고 매끄러운 윤기를 만들어낸다는 것이 뻑뻑한 눈을 끔뻑이며 출근하는 나에게는,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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