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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Sep 16. 2020

될 관계, 안 될 관계

- 사랑과 연애, 관계에 대한 짧은 소견

나를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나는 연애의 천재가 된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기만 하면, 균형이 무너진 전투는 나에게만 유리하게 흘러간다. 나는 바라는 대로 밀당을 할 수도 있고, 굴곡 없이 관계를 진전 시킬수도 있으며, 상대를 애태우거나, 혹은 안심시킬 수도 있다. 초등학교 3학년짜리 아이와 오목을 두는 것과 비슷하다. 게임을 싱겁게 이겨버릴 수도 있고, 어차피 이길 테지만 좀 더 질질 끌어볼 수도 있으며, 재미로 한판 쯤 져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멍청이가 된다.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없고, 일희일비하게 되며, 수없이 많은 자기검열로 자존감을 나락까지 처박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나와 같이 멍청이가 될 상대방도 내 앞에서는 연애의 천재가 되고 만다. 나에게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상대에게 빠져버릴 때면, 나는 마치 인질범을 대하는 협상가가 되는 것 같다. 질질 끌려다니느라 주도권을 완전히 잃어버리면서도 그와의 연결을 유지하기 위해 충실할 수밖에 없는 애처로운 신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며 ‘나’의 감정과 기분을 모조리 감춰야하는 신세가 된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 완벽한 연애의 천재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세계 속에 놓여 있다. 하버드에도 꼴지가 있듯이 연애의 고수라는 칭호도 결국에는 상대적인 것이겠지. 먼저 균형을 잃고 상대에게 매료되기로 마음먹으면, 필승법이라는 건 사라지고 만다.        


마찬가지로 어느 순간부터는 여자 꼬시는 법, 남자 꼬시는 법에 의기양양한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세상에 수많은 유형의 사람이 있는 만큼 욕망도 입체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연인은 사람마다 다르고, 같은 사람이라도 시기마다 가치관이 달라지는 법이다. 그래서 이른바 연애의 ‘마스터키’란 존재하지 않는다. 연애를 능수능란하게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견 없이 예쁘고 잘생겼거나, 자신의 내면적 매력을 잘 알고 성공률이 높은 쪽을 잘 공략하는 타입이었다. 순전히 연애의 관점에서 볼 때, 이들은 상대를 타고난 매력조건으로 압도해서 어차피 ‘이길 사람’ 이었거나, 자기객관화가 잘 돼서 ‘이길 싸움만 하는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인 경우였다.  ‘내가 남자 다루는 법을 좀 알지.’ 자만하는 여자들, 혹은 반대의 남자들을 숱하게 보아왔지만 결국 그들이 다룰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남자’ 혹은 ‘여자’라는 사람들이 그 사람에게 딱 다뤄질 만한 위인이었다.      


비슷한 매력과 비슷한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우연히 만난다면 ‘될 관계’라는 게 성립한다. 나는 이 ‘될 관계’에 주목한다. 이 마음은 관계를 성사시키기 위해 애쓰지 않게 만든다. 될 관계라면 대단한 노력 없이도 결국 이어지게 될 것이고, 안 될 관계라면 아무리 애를 써도 성사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될 관계’는 우주를 둥둥 떠다니는 인공위성 부품과도 같아서, ‘툭’ 미는 정도의 노력만 있어도 쉽게 미끄러져 나간다. 심지어는 알아서 가속도까지 붙으며 전진한다. ‘안 될 관계’는 그네에 타 있기라도 한 것처럼 힘을 써도 다시 밀려나고, 포기하는 순간 싱겁게 원점으로 회귀한다. 대부분의 연애는 이렇게 ‘될 관계’가 신화 속 신탁이 이루어지듯 ‘되는’ 과정 속에서 성립한다.       


나는 이를 몸소 겪을 때마다 운명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리스 신화 속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할 것이라는 신탁(예언)을 피하려 애를 쓰면서도 결국 스스로 완성시켰듯. 모든 인연은 별 노력 없이도 탑을 쌓아갔다. 반대의 노력은 눈오는 날 눈 쓰는 것처럼 부질없기만 했다.       


‘될 관계’와 ‘안 될 관계’ 사이에서 오늘도 하루가 흘러간다. 인간이 공통으로 겪어 나가는 운명은 먹고, 살고, 죽고, 병드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왜 여기에 사랑은 여봐란 듯이 빠져 있을까. 이를 납득하지 못하면서 사랑과 연애에 대해서 생각하는 오늘밤, 나는 인간의 삶이 생로병사랑(生老病死愛)속의 여정이라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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