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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Feb 06. 2021

정박도 타기 전에 엇박부터 타라 하네

-영화 <승리호> 리뷰

솔직히 말해서, 승리호는 팰 맛나는 영화다. 애초에 예술성이랄 것이 없는데다가, SF라는 장르 자체가 상상력으로 우겨버리는 영화라서 꼬투리를 잡을 것도 많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나 봉준호같은 명감독이 작정하고 건드려도 옥의 티가 셀 수 없이 나오는 마당에, 텐트폴 영화로 기획된 영화에서 대단한 작품성을 기대하는 건 어쩌면 과욕에 가까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승리호>를 예고편이라는 단 하나의 기준으로 평가하기로 했다. 예고편보다 못한 본편일 것인가, 예고편만큼은 되는 영화인가. 영화를 봤을 때 배신감을 느낄 만한 영화인지, 배신감까지는 아닌 영화인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감상했다. 그리고 2시간이 넘는 상영시간 후 엔딩크레딧의 순간에 내린 나의 결론은. “이 정도면 배신은 아니다” 였다.      

<승리호>는 웃음이 나올 정도로 전형적인 영화다. 헐리우드의 저명한 시나리오 작가 ‘제임스 스콧 벨’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분석하면서, 그 기본 구조를 ‘LOCK 체계’로 정리하였는데, 승리호는 그야말로 이 LOCK 구조를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LOCK 체계는 주인공(Lead)이 분명한 목표(Objective)를 가지고 적대자와 대결(Confrontation)하여 통쾌하게 완승(K.O)하는 구조를 말하는데, 인간이 흥미롭게 여기는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 구조를 따르고 있다고 한다.      


해리포터: 억압받는 고아 해리포터가 마법세계를 구하기 위해 볼드모트에 대항하여 그에게 승리하고 세계를 구해낸다.
어벤져스: 슈퍼히어로들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타노스에 대항하여 그에게 승리하고 세계를 구해낸다.
레옹: 특급 킬러가 소녀를 구하기 위해, 부패 마약 경찰들에 대항해 소녀를 지켜낸다.  
아바타: 해병대원이 판도라 행성과 나비족을 지키기 위해 잔혹한 인간 군대에 맞서 행성을 지켜낸다.
매트릭스: 주인공 네오가 인간을 구해내기 위해 인공지능 AI에 맞서 싸워 매트릭스 세계에서 인류를 해방한다.     

이처럼 전형적이고 신화적인 이야기 형식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인 재미를 줄 수 있기에 대중을 겨냥한 상업영화에서 흔히 시도된다. 송중기를 필두로 한 우주해적단이 꽃님이를 지켜내기 위해 빌런 설리반에 맞서 싸워 승리하고, 지구의 시민들과 꽃님이를 지켜낸다는 <승리호>의 전형성 또한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의도적으로 선택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승리호>를 그 전형성만으로 문제 삼는 것은 조금 난처한 일이 될 수 있다. 백종원의 홍콩반점이나 새마을식당에서 뻔한 맛이 난다고 역정을 낼 수 없는 것처럼, <승리호>를 보면서 비교 대상을 <인셉션>이나, <인터스텔라>로 삼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전형적인 전개방식에 조금 허탈함이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만족스러웠던 점도 사실은 그 전형성에 있었다. 전형적인 인물들이 전형적인 구조로 전형적인 이야기들을 진행해 나가는 모습이 일견 안정적으로 보이기도 다. 이렇게 뻔한 SF가 왜 한국에만 없었는가. 뒤늦은 아쉬움도 생겼다. 준수한 만듦새로 정박자를 맞춰가며 펼쳐지는 모범적이고 매끈한(대단히 시시했지만) 영화가 이제라도 만들어졌다는 것이 희망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승리호>가 아니었다면 도대체 이토록 뻔한 SF우주활극을 언제쯤 만나볼 수 있었겠는가. 나는 이 영화보다 매번 얄팍한 방식으로 찍어내는 <걸캅스>, <히트맨>같은 영화들이 나쁘다고 생각하고, 도전의식 없이 그야말로 전형성에만 기댄 <자전차왕 엄복동>, <봉오동 전투>같은 영화들이 훨씬 괘씸하다.      


이정도 제작비가 들어간 우주 오락영화치고 전형적이지 않은 작품은 드물다. 나는 이렇게 쿵짝쿵짝 정박으로 질주하는 평균점수의 영화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제 쿵짝짝 쿵짝짝 왈츠로 가는 SF도 나올 것이고, 자유자재로 박자를 경쾌하게 뒤트는 엇박 SF도 나올 것이라 믿는다. <극한직업>이나 <엑시트>가 신파 없이 코미디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듯, <승리호>도 한국에서 SF 된다는 파이팅을 해냈다고 본다.     

그러므로 나는, <승리호>자체보다 앞으로 승리호를 밟고 제대로 날아오를 어떤 작품의 탄생을 기대한다. 어딘가 더빙영화같이 들리는 사운드라든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이는 과학기술이라든가, 인물들의 작위적인 백스토리, 다분히 개연성 없이 감정부터 폭발하는 전개 같은 것들이 내 목구멍을 간질간질하게 만들었지만. 그 답답함보다, ‘잘 걸렸다 이놈들’ 하며 욕하기 바쁜 영잘알 리뷰어들이 미리 걱정됐다.      


“구린 영화를 구리다고 하지, 뭐라고 하나요?” 라는 말에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사실 구린 영화는 구리다고 하는 게 맞으니까. 어쩌면 나는 학예회에서 연극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학부모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관대해지고 싶은 순간 있지 않나. 나라도 여기서 짝짝짝 박수를 몇 번 쳐보겠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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