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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an 30. 2021

오팔 안에 우주가 있다

영화 <언컷 젬스> 리뷰

(스포일러 있음)     


그러므로 공 가운데에는 실체가 없고 감각·생각·행동·의식도 없으며,
눈도, 귀도, 코도, 혀도, 몸도, 의식도 없고,
색깔도, 소리도, 향기도, 맛도, 감촉도, 법도 없으며,
눈의 경계와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늙고 죽음이 다함까지도 없고,
고집멸도도 없으며, 지혜도 얻음도 없느니라.
-반야심경 中-     

‘스포일러 있음’을 <언컷젬스> 리뷰의 첫 문장으로 적었다. 영화 리뷰를 쓸 때는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싶은 마음이 있으므로, 언제나 스포일러 없이 영화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진다. 하지만 <언컷젬스>는 스포일러 없이 설명할 수 없는 영화다. 이 영화는 마지막, 하워드가 총에 맞아 죽는다는 사실로 완성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렇다. 이 영화에서 하워드는 비로소 모든 것을 이루었을 때, 세상에서 가장 허무하고 비참하게 총에 맞아 죽는다. 하워드가 그렇게 죽지 않았다면, 이 작품은 아무것도 아닌 영화가 됐을 것이다. 2시간의 아웅다웅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다. 하워드의 성공으로 이 영화가 달성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하워드가 죽는 순간. 보는 이는 귓속으로 울리는 반야심경을 듣게 된다.     


극중 하워드는 개차반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충분히 성공했으면서도 뒷골목 양아치 같은 삶을 산다.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며,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과 얽힌다. 뻔뻔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갈 때는 안타깝지만, 그 자신도 사실은 누군가를 뻔뻔하게 속여 넘기는 존재다. 돈에 미쳐서 사는데, 정작 돈 때문에 온갖 고초를 다 겪는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금은방의 갖은 목걸이, 시계, 장식품들은 다이소의 싸구려 생필품보다도 못하게 느껴진다. 우리의 시각마저도 하워드의 수준으로 조정된다.


 그의 행적을 바라보는 것은 피로하다. 왜냐하면 하워드는 너무도 생생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반야심경의 공(空)과 그는 정확히 대척점에 있는 존재이다. 그의 삶을 반야심경대로 풀어보자면 이렇게 된다. 그러므로 하워드에게는 실체가 있고, 감각·생각·행동·의식도 있으며, 눈도, 귀도, 코도, 혀도, 몸도, 의식도 있고, 색깔도, 소리도, 향기도, 맛도, 감촉도, 법도 있으며, 고집멸도도 있으며, 지혜도 얻음도 있느니라.      


그는 소음의 세계에 존재한다. 하워드의 실체, 그의 현실은 소음으로 표현된다. 영화가 내내 지나치게 시끄럽고 어수선한 이유는 공(空)의 대척점에 있는 하워드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영화 <그래비티>에서 주인공 ‘라이언 스톤’은 자신의 어린 딸을 잃고 실의에 빠진 채 중력조차 없는 우주로 떠나온다. 그곳에는 중력도, 소리의 매개체도 없으므로 정적만이 가득하다. 삶의 미련을 버리고 떠난 라이언 스톤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지구로 복귀하게 되는데, 영화의 막바지, 그녀가 가장 반가워하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소리’다. ‘소리’가 없는 곳에서 ‘소리’로 복귀하는 그녀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 수많은 소음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게 된다. 인간은 트러블 없이는 생을 실감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하워드의 삶은 그야말로 트러블의 연속이다. 마음 편히 풀리는 일은 단 한 가지도 없다. 얄궂게도 트러블은 결정적으로 그를 망하게 하지도 않는다. 광야를 떠돌던 모세 일행에게 먹고 살 만큼의 메추리와 만나가 지급되듯이, 그에게도 딱 숨통을 트이게 할 정도의 요행이 따른다. 그가 전당포에서, 장인에게서, KG에게서 돈을 융통하고, 돌려막는 모습은 보는 이를 피말리게도 하지만 안도하게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결국 바닷물을 퍼마시며 갈증을 해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결말,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 식으로 하워드는 사망한다. 영화 내내 관객을 옭아맸던 그 지지부진하고 피곤한 전쟁에서 간신히 승리한 찰나였다.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그의 환희는 짧았고, 총성은 빨랐다. 하워드는 차마 놀라지도 못하고 바닥으로 기운다. 그의 상처 속으로 카메라는 줌인하고, 그 속에 오팔이 있다. 우주를 닮은 모양으로.      

결국 하워드는 삶 속에서 그토록 고통스러웠으나, 사망한 이후에야 그 모든 고통을 내려놓게 된다. 그가 평생 좇은 것은 돈과 행복이었으나, 그것을 좇는 동안에는 결코 부유하지도, 행복하지도 않았다. 그는 아무런 표정 없이 피를 흘리며 누웠다. 아마도, 돈과 무관하게 감정을 나누었던 줄리아를 마지막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후회를 할 여력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가늠할 수 없는 그의 표정을 보고 있으면 반야심경의 글자들이 떠오르는 것 같다.     


얻을 것이 없는 까닭에 보리살타는 반야바라밀다를 의지하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어서,
뒤바뀐 헛된 생각을 멀리 떠나 완전한 열반에 들어가며… 최상의 깨달음을 얻느니라.     


마음의 걸림도, 두려움도, 헛된 생각도 없이 완전한 열반으로 들어간 하워드의 요란한 삶이 삼라만상을 담고 있는 오팔이고, 오팔 속에 우주가 있음을. 영화는 허탈하게 비웃으며 읊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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