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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Feb 27. 2021

새에게 목줄을 채워 산책을 시킨다면

내겐 너무 이상한 '도시의 반려동물'

오늘도 개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을 셋이나 보았다. 다정한 주인과 신난 강아지를 보고 있으면 어딘가 마음 한 구석이 이상해진다. 목줄을 잡고 개를 산책시키는 모습을 보면 내 눈에는 목줄을 하고 새를 산책시키는 모습으로 바뀌어 보인다. 이런지는 참으로 오래되었다.

나는 도시가 반려동물과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이라 생각지 않는다. 지금의 반려동물 문화가 그야말로 인간 중심적인 비극적 풍경이라 본다. 인간이 자연으로 돌아가든가, 그들을 자연으로 돌려주든가. 양자택일의 문제 같다. 이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포기하지 않고 어떤 타협점을 찾겠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할 생각임을 알기에 늘 입을 다물지만, 나는 가능하다면 지금이라도 모든 반려동물의 '생산'을 멈추고 동물과 인간이 진정한 의미에서 협력하여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반려 혹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동물을 공급할 노릇인지 묻고 싶다.

도시에서의 반려동물은 기형적인 논리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인간과 같은 가족이라 불리지만 성장과 독립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관계나 행동에 있어서 주체적인 선택이 보장되지 않으며 그들의 타고난 본성에 반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영위하게 한다. 어느샌가부터 어영부영 꼬여버린 고리가 이제는 너무도 단단해져 버렸다.

이미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과, 그로 인해 행복해하는 반려동물들에게 주제넘게 틀렸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녀야 할 새들을 잡아서 목줄을 채우고 연처럼 매달아 산책시키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새가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당신이 그 새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실과 별개로 그것은 바람직한 공생이 아닐 것 같다. 하루에 한 번 혹은 두 번, 한 시간 정도 공원과 골목을 적당히 날게 해주는 것은 주인이 베푸는 호의인가 혹은 억압인가. 하늘을 날고 싶어 파닥이는 새의 모습을 귀여워하는 것은 사랑이 될 수 있을까.

인간과 동물이 서로를 반려라고 부를 수 있으려면 정확히 동등한 관계여야 할 것 같다. 인간과 동물이 우연한 계기로 만나고, 서로가 서로의 필요에 의해 이끌리고, 어느 쪽이든 언제나 떠날 자유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인간끼리도 그렇게 만나지 않나. 왜 도시적 반려동물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구입하거나 증여받아 관계가 시작되고, 떠날 자유가 주어지지 않는가.

애초에 동물과 반려가 될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흔하게 부여되지 않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과 동물이 교류하는 반려 관계는 아주 드물고 희소한 사례일 것이다. 몇 백만의 반려동물은 가능하지도, 가능할 수도 없다. 분명 어딘가 잘못된 것이다.

독립적인 존재는 결코 길들여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믿는다. 기꺼이 길들여지고 싶다는 마음은 사랑에 가까울지 몰라도 누군가를 길들이려는 마음은 이기심에 불과할 것이다. 사람과 다름없는 가족이라 말하면서 먹이를 미끼로 온갖 종류의 훈련을 시키는 것도 난감하다. 손을 내밀게 하고 배를 까뒤집게 하는 것, 음식을 앞에 놓고 참게 하는 것은 진짜 사랑인가.(중성화라든지 성대 절제술 같은 얘기까지 하면 너무 무거워질 것 같다)

개나 고양이에게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 인간에게 구입되어 평생 그들에 의해 양육되며 유대감을 전해주는 것이 생의 소명인가. 정서적 안정감과 안락한 삶을 교환하는 행위는 동물에게 정당한 거래인가 아니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운명인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집집마다 행복하게 살고 있는 개와 고양이들을 억지로 떼어놓고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하나. 이제 와서 그들을 차갑고 냉정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굶어 죽도록 해야 하나. 어려운 문제다. 이미 가족을 이루고 있는 그들을 떼어놓자비난하기보다는. 적어도, 좀 이상하지 않느냐고 물어볼 수는 있는 세상이 왔으면 한다. 도시에 갇혀 자연으로부터 격리된 인간이 어떻게 하면 동식물과 어우러져 살 수 있을지. 이상적인 도시의 모습은 무엇일지. 인간 중심적인 반려동물 산업이 어떻게 하면 정상화될 수 있을지 논의되었으면 한다.

이 글로 행복해지는 사람은 누구일까. 어차피 반려동물을 키울 생각이 없는 사람?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 키워보았던 사람? 키울 예정인 사람? 어느 쪽도 아닌 것 같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반려동물과 행복하게 지내는 많은 사람들에게 혹시라도 상처가 될 수 있으리라는 걱정도 앞선다. 그 때문에 언젠가는 지우게 될 글일 수도 있겠다.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다는 자괴감이 들지만. 그저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썼다. 무거운 마음으로 힘겹게 마침표를 찍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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