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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Feb 24. 2021

나는 ENTP, 뜨거운 논쟁을 즐기는 변론가.

나에서 외부로 확장되는 글쓰기

ENTP: 박식하고 독창적이며 창의력이 풍부하다. 안목이 넓고 다방면에 관심과 재능이 많다. 풍부한 상상력과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솔선력이 강하며 논리적이다. 새로운 문제나 복잡한 문제에 해결 능력이 뛰어나며 사람들의 동향에 대해 기민하고 박식하다. 그러나 일상적이고 세부적인 일을 경시하고 태만하기 쉽다. 즉,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에서는 대단한 수행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새로운 도전이 없는 일에는 흥미를 가지지 못한다. …<후략>    출처:나무위키


나무위키에서 ENTP 성격유형의 설명을 본다. 논문처럼 길게 작성되어있는 문서에는 내 성격유형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특징이나, 보완해야할 점, 다른 유형들과의 관계,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관련 밈까지 빼곡하게 적혀있다. 읽어보면 하나같이 너무 맞는 말이어서 절로 무릎을 탁 치게 된다. 설명 하나하나가 나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바넘효과(모든 사람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성이지만 나에게만 해당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진짜 나 자신. 그 자체다.


어쩜 이렇게 나에 대해서 잘 정리해두었을까 싶지만, 사실 대단히 신기한 일은 아닌 것 같다. MBTI라는 게 그런 함정이 있다. 나와 대화를 해보거나 지켜본 뒤 통찰력 있게 파악한 것이 아니라, 그냥 내가 답을 다 불러준 것이다. 내가 나에 대해서 이실직고한 것이고, MBTI는 그걸 조합해서 알려주었을 뿐이다.


1. 특별한 날에 당신은 어떻게 식사하기를 원합니까?
A)오마카세 초밥집 B)한정식집 C)파인 다이닝 D)중식당 코스요리
2. 배가 적당히 고플 때 무난하게 무엇을 먹습니까?
A)짜장면 B)백반 C)파스타 D)돈카츠
3. 평생 한가지 음식만 먹어야 한다면 무엇을 드시겠습니까?
A)비빔밥 B)스테이크 C)초밥 D)짬뽕


이를테면 이런 질문 수십 개에 답하게 하고, 당신의 음식선호유형은 ‘한중양일’ 스타일입니다. ‘일양한중’ 스타일입니다. ‘중한일양’스타일입니다.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당신은 평소에는 한식 위주의 식사를 하지만 특별한 날에는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 써는 것을 즐깁니다. 초밥을 먹을 수 있지만 일식을 즐기는 편은 아닙니다” 같은 말은, 응답자가 설문에 솔직하게만 임했다면 그리 어려운 대답이 아닐 것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에 대해서 궁금해 한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대뜸 생각해보면 막막한데, 이렇게 질문에 답해보면 알 수 있다. 사실 자신도 알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었는데, 그걸 정리해서 보여주면 막상 신기하긴 하다. 간단한 설문으로 나에 대해서 빼곡하게 설명해주는데 누가 MBTI를 싫어할 수 있을까.


요즘은 채용 시 MBTI를 물어보는 회사도 있다고 한다. 유튜브에서는 각 MBTI별로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한다. MBTI 궁합에 대한 영상이 있는가하면, MBTI 별 인간관계 팁 같은 것도 알려준다. 이처럼 MBTI는 나를 알기 위한 설문 뿐만 아니라, 이제 타인을 이해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타인의 MBTI를 확인하는 일은 내가 하나씩 질문하며 알아가야 했을 상대의 성격 유형을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효율적이고 직관적인 방법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세태가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어차피 사람의 중요한 정체성이랄까, '디테일'은 만나면서 알아갈 수밖에 없으니 굵직한 성격 유형쯤은 미리 알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치명적인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고, 상대를 얼추 가늠 해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정작 나는 타인의 MBTI가 별로 궁금하지 않은 것 같다. 나의 관심은 오로지 나를 향한다. 그런 사고방식이 마치 내가 쓰는 글과 닮아있다고 생각했다. 몇 년간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나는 언제나 나 자신을 탐구하고 있는데, 그게 부끄러울 때가 종종있다.  


이슬아 작가가 자신의 강연에서 꾸준한 글쓰기에 대해 말한 바를 떠올린다. ‘꾸준한 글쓰기는 나에 대한 사랑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나르시시즘에 갇힌 글쓰기는 몹시 답답하고 좁은 세계일 것이다.  꾸준한 글쓰기는 나에게서 남으로 주어를 이동하고 확장하여 다른 사람의 마음과 삶에 부지런히 접속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MBTI를 궁금해하던 사람들이 타인의 MBTI로 관심을 넓히는 것처럼, 요즘에는 내가 쓰는 글도 ‘나’에서 외부로 확장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너무 탐구하고, 실상 실천에는 더딘 삶이 조금 징그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좀 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관심을 갖고, 주변의 인물들에게 시선을 던지는 삶을 올해에는 시도해 봐야겠다.


를 향하는 그 지극한 호기심을 바깥으로 돌릴 수만 있다면 나처럼 이기적인 사람이야 말로, 진정 이타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가져본다. 나에 대한 관심이 곧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하는 것이라면, 모든 이타적인 사람들은 결국 자신을 깊이 있게 탐구해낸 사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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