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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Feb 19. 2021

지구인, 그녀를 생각하며

유튜버 은짱 생각

종종 내가 죽음과 격리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의 삶속에는 도무지 죽음이란 게 없다. 매일매일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데, 내 일상에서는 그것들이 모두 도려내진 상태다. 죽음이나 투병은 젊고 건강한 내가 감지하기에는 너무나 멀리 있다. 출생이나 육아의 장면들이 보고 싶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것과 상반된다.


그래서 내 일상은 자주 평화롭다. 아무도 죽지 않는 날들이 계속 된다. 모두가 영생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일을 확신하고,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만 주변에 가득하다. 그런 환경에 놓여있다보면 나도 영원히 살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한다. 막연히 ‘나는 절대 죽지 않을 거야.’ 생각하는 것은 아니고 ‘적어도 내일은 살아 있겠지’하고 생각하는 쪽인데, 살아있는 한 영원히 눈앞에서 내일이 아른거린다는 걸 떠올려보면 그게 영생의 기대와 무엇이 다를까 싶다.


아무튼 오늘은 '지구인'을 생각한다. JIGUIN유튜버 '은짱'채널 이름이다. 내가 그녀를 처음 만난 것은 2019년 말, 한창 펜벤다졸의 항암치료 효과가 이슈이던 시기였다. 알고리즘의 추천으로 내 피드에 등장한 그녀는 담도암 말기 환자였는데, 그 에너지가 여타의 환자들과는 남달랐다.


그녀는 매우 밝고, 긍정적이며, 철학적이고, 사려깊고, 영리하며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그녀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삶의 찬란함이나 소중함에 대해서도 여러 번 곱씹을 수 있었다, 긍정적인 삶의 자세라든가, 의연한 마음가짐에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녀의 투병을 멀찍이 지켜보면서 나는 진심으로 그녀가 쾌차하기를 바랐다. 실제로 훌훌 털고 일어날 것만 같았다. 심각한 병세와는 다르게 때로는 아픈 사람 같지 않을 정도로 정말 활력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치병을 이겨내는 기적은 쉽게 허락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시간이 경과할수록 그녀는 수척해졌고, 생기를 잃어갔으며, 영상이 업로드 되는 간격도 점점 늘어갔다. 나는 내 삶을 살아가느라 때때로 그녀를 잊고 살았지만, 새로운 영상이 올라올 때마다 반갑게 클릭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기대한 건 그녀의 병이 회복세에 들어섰다는 것, 암의 전이가 멈추고 펜벤다졸이든 뭐든 효과가 드러난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였다. 고통이 심해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고 했고, 암은 다른 부위에까지 전이되었으며, 펜벤다졸은 영 효과가 없어 투약을 중단했다고 했다.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마지막 영상이 올라온 건 직전 영상이 업로드 되고도 한참 이후의 일이었다. 충격적이었다. 생명력이라고는 남아있지 않은 앙상한 얼굴. 썸네일을 보고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서 인터넷 창을 서둘러 닫아버렸다. 그 모습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사실 또한 그제야 깨달았다. 극도로 마른 것과, 병으로 인해 극도로 수척해진 것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영상을 제대로 보게 된 것은 일주일 정도가 지난 후였다.


"너무 무섭게 생겼죠." 자꾸 자신의 외모를 걱정하는 그녀의 말들이 마음에 걸렸다. 예전과 달리 확신이 없어진 자세도 안타까웠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그 웃음과 긍정적인 사고방식, 유머감각만은 그대로였다. 실로 깊이 존경할 수 밖에 없었다. 한 번도 만나지 못했으나 많은 것을 배웠다고 전하고 싶었다.


1분 1초도 불행하지 말라는 그녀의 말은 아직도 내 마음 속 깊이 남아있다. 기력을 다 소진한 채였지만, 여전하게 밝고 단정한 모습의 그녀였다. 얼마 뒤 그녀가 영면했다는 소식이 채널 커뮤니티에 게시되었고, 예견된 일이었음에도 무척이나 마음이 쓰렸다.


이제는 머나먼 별로 떠난 지구인 은짱. 몇 달이 지나면 그녀의 기일이 된다. 나는 종종 별 계기 없이 그녀를 생각하곤 한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이렇게 드문드문 그녀를 떠올릴 것 같다. 아까는 유튜브를 찾아보다가 문득 그녀의 마지막 영상이 보고싶어 다시 한 번 보았다. 그리고 잘 지내시냐는, 또 잘 지내시라는 말을 내 공간에서나마 짧게 전하고 싶어졌다.


누군가를 애도하거나, 그리워하거나, 걱정하며 하루를 마무리하게 되는 밤이 있다. 오늘이 그런 날인듯 싶다. 이런 밤엔 여느때와 다름없이 일상적인 내 하루가 유독 더.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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