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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Feb 11. 2021

비트코인이 떡상할 때

이토록 상대적인 세계에서 행복하기

테슬라가 자사의 전기차를 비트코인으로 구입할 수 있게 하겠다 말하며, 비트코인을 대량으로 구입했다. 발표 이후 비트코인은 말 그대로 ‘떡상’하고 있다. 그걸 바라보는 나는 어떤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이를테면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픈 느낌. 누군가가 쉽게 돈을 벌어서 아니꼬운 마음을 생각한다. 그리고 더해서 나는 왜 타인이 돈을 버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조금씩 불행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낄까 고민해본다.   

  

이 세상은 어찌나 상대적인지. 언젠가 네이버 검색창에 ‘손가락 절단’을 검색해본 일이 있다. 그러자 손가락 절단과 관련된 세계가 펼쳐졌다. 지식인에는 손가락이 절단된 사람들이 수많은 고민을 털어놓고 있었고, 그와 관련된 병원들이 교묘한 광고멘트와 함께 답변을 달아주었다. 한의원 광고 팝업이 뜨고, 관련된 약들도 소개 됐다. 세상은 패스츄리와 같아서 서로 다른 층층이 애매하게 얽혀있었다. 그 날의 나는 ‘임신 가능성’이라든가, ‘다문화자녀전형’, ‘기초생활수급 자격요건’ 같은 것들을 검색했고, 그럴수록 내 삶과 전혀 무관한,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수많은 사람들이 안개가 걷히듯 나타났다.      


‘증여받은 건물’을 검색했을 때도 딱 그만큼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엄청나게 잘 살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운이 좋은 사람들. 생존의 최전선에 있는 갈등이 아니라, 적당한 스트레스로 다가올 그들의 고민은 또 이전의 검색과는 결이 달랐다. 누군가는 기초생활수급 자격 요건을 고민하고, 누군가는 양도소득세를 고민한다는 것에 어린 나는 무척이나 미묘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비트코인의 가격이 올랐을 때, 나는 왜 상대적인 불행을 느꼈던 것일까. 그리고 그건 왜 허탈했나. 문득 무서운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보다 행복해서 내가 불행한 거라면, 누군가의 불행을 보며 기뻐할 수도 있는 사람이구나. 내 돈은 통장에 가만히 있는데, 누군가의 잔고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씁쓸해하는 사람이라면, 내 돈이 통장에 가만히 있는 채로, 누군가의 잔고가 낮아지는 것을 보고 행복해할 수도 있는 사람이 아닐까. 나는 정말 그러기 싫은데, 차라리 이것이 인간의 본성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놀이공원에서 줄 서는 것 지루해 하면서도, 순차적으로 차곡차곡 입장한다는 것에 어쩐지 안도하고. 나보다 저 멀리 뒤에 서있는 사람을 보면서 내 처지를 위안하며, 놀이기구에 탑승한 채로는 으쓱해하는 사람. 꽉 막힌 도로, 버스 창가에 앉아서 오도가도 못하는 벤츠를 보며 ‘당신도 교통 정체는 어쩔 수 없나 봐요.’ 생각하는 사람. 백분율을 따져가며 행복하기란 불가능 해, 행복은 오로지 절대평가로 채점해야 해, 이 단순하고도 어려운 말은 언제나 머릿속에서만 빙빙 돈다.


세상이 그래프로 보이는 날이 있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와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오르는 연기와 내리는 비,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는 사람들까지. 그럴 때는 마음을 바로잡기가 어렵다. 결국 나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계단을 오르내리는 한 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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