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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Feb 02. 2021

글 쓸 때 까칠한 사람들

감정이 왈칵 쏟아진 글

까칠한 사람 좋아하냐고. 혹시라도 묻는다면, 절대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까칠한 사람은 나 하나로 족하다는 생각이다. 나는 매끈한 사람이 좋다. 자기 매력으로 똘똘 뭉쳐서 같이 있으면 즐거운 사람. 더 좋은 쪽은 착한 사람이다.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아늑한 기분이 드는 선한 사람. 그런 이와 있을 때 나는 진정 행복해진다. 반면에 까칠한 사람과는… 사실 조금 부딪힌다. ‘너 까칠해? 오케이. 나도 한 까칠 보여드림.’ 괜한 신경전을 펼치고 싶어지기도 하고, 한 번 쯤은 콱 짓눌러버리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그 정도가 내 도량의 한계라는 것이 안타깝지만 이제 와서 내 성격을 리모델링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매끈하고 선한 사람을 좋아하는 나는, 유독 글쓰기 영역에서는 반대가 된다. 까칠하게 글 쓰는 사람들을 좋아한다. 까칠한 글이 제일 좋고, 그 다음은 매끈한 글, 그 다음으로 착한 글이 좋다. 착한 글은(착하기만 한 글은 더더욱)사실 별로 매력 없다.     


착한 글은 좋은 글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착한 글은 입체적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이렇게도 착할 수 있구나!’ 하는 철학을 겪어본 바가 없다. 그냥 내가 아는 이상적인 상태, 이타적이고 순수한 마음 정도에서 그친다. 그런 건 내 머릿속에도 지겨울 정도로 흔하다. 대문호의 글쓰기라면 다르지 않을까 싶은데, 사실 대문호가 착한 글을 썼던 적이 있던가? 잘 기억 안 난다. 훌륭한 작가들은 모두 단순하게 착한 마음보다는 복잡하게 나쁜 마음을 다루는 것 같다. 그들은 보통 ‘착함’보다 더 세밀한 감정들을 다룬다.     


까칠한 글은 언제나 내 눈을 휘어잡는다. ‘엄마로 인해 내 유년시절은 불행했다.’로 시작하는 글은 굳이 읽어보지 않지만 ‘엄마 년만 아니었더라면 내 인생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로 시작하면 읽는다. ‘나는 ~해서 외롭지 않습니다.’ 같은 글을 보면 (외로우시구나 생각하면서) 무심하게 눈을 돌리지만 ‘내가 만난 남자들 지금 보면 다 행복하게 살더라.’ 하며 씁쓸하게 적어놓은 문장을 보면 정독한다. 프로필 소개란에도 ‘아름다운 마음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같은 글귀가 적혀있으면 "단정한 분이시군." 생각하고 넘어갈때가 많지만 ‘보기 싫음 꺼지세요. 내 공간입니다.’ 같은 글귀가 적혀있으면 차근차근 글들을 읽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나는 자극적인 문장들에 부나방처럼 이끌리는 것일까. 전혀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이를테면 “그녀가 떠났다. 외롭다.” 같은 문장에는 또 자극적인 문장이 아니라도 눈길이 간다. 단문을 썼고, 담백하고 건조한 문장이라서가 아니다.(나는 단문 좋아한지 오래됐다.) 말하자면 나는 감정이 ‘왈칵’ 쏟아져있는 글을 좋아하는 것이다.     


흔히 우울증은 예술가의 병이라고도 한다. 이 말은 언뜻 우울증이 좋은 예술을 하는 데에 도움을 주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우울은 사람을 오로지 그 감정에 잠식되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우울에 깊이 잠겨있는 사람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을 오롯이 담아낼 수 있게 된다. 그러니까 우리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신의 감정에만 집중할 수 있다면 좋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까칠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은, 남 눈치 안보고 자기 얘기를 한다. 우리가 고흐나 커트 코베인같이 우울한 예술가의 작품에 이끌리듯이 감정이 왈칵 쏟아진 까칠한 글은 언제나 나에게 신선한 깨달음을 준다. 그런 글을 만날 때면 인공눈물을 눈에 넣은 것처럼 촉촉해진다. 꾸민 글이 눈에 넣은 수돗물처럼 눈동자를 뻑뻑하게 만드는 것과는 반대로.     


나는 이전에 솔직한 글쓰기의 유효성에 대해서도 글을 쓴 적이 있는데, 그러고보니 맥락이 연결된다. 솔직하고, 감정이 왈칵 담긴 글. 나는 결국 그런 글을 지향하는 사람 같다. 앞으로도 그런 글들에 이끌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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