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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an 29. 2021

아무렇지 않다

번역이 불가능한,

검정치마 - 나랑 아니면 MV Teaser
아무렇지 않게 넌 내게 말했지.
                           검정치마 - 나랑 아니면 中     

‘아무렇지 않다’는 말을 어떻게 번역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말을 번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설명조차 무척 어렵다.


괜찮다. 좋다. 신경쓰지 않는다... 비슷한 말들은 있다. 하지만 ‘아무렇지 않다’는 그런 말들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괜찮다’와도 다르고. ‘좋다’하고는 더더욱 다르다. 아무렇지 않은 것은 어떠한 자극이 나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한 상태에 가깝다. 긍정도 부정도 담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 말을 I’m OK나 I don’t care로 번역해서는 안 된다. 아무렇지 않음은 괜찮은 것도 아니고, 신경 쓰지 않는 것도 아닐 테니까.    

 

‘아무렇지 않다’는 변함없는 상태를 말한다. 어떤 사건이나 말이나 행동이 나에게로 다가왔는데, 그럼에도 나의 상태가 변하지 않을 때 쓸 수 있는 말이다. 그렇다면 ‘Still The Same’으로 번역해도 될까. 언뜻 정확한 것도 같은데, 역시 그렇게 표현해서도 안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아무렇지 않은 상태는 이전과 정확히 같거나, 정확히 여전한 상태는 또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렇지 않다는 말에는 행동이나 사건이나 말이 전달된 역사가 남아 있다.      

잔잔한 호수에 누군가 조약돌을 던진다. 호수에 돌이 떨어지고, 떨어진 곳에 물이 튀고, 물결이 인다. 물결은 잦아들어 호수는 예와 같이 다시 잔잔해진다. 호수는 예전 그대로의 호수일까? 그 호수는 이전의 호수와는 다른 호수일 것이다. 조약돌이 떨어져 본 적이 있는 호수. 파동이 일었던 호수. 조약돌의 역사가 새겨진 호수이다. 물리적 충격이 가해진 호수는 그 이전의 상태와 겉보기에는 같아도(Still the Same) 같은 것이 아니다.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사람이 어떤 상황에 새롭게 놓였을 때, 아무렇지 않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누군가가 나에게 무엇이든지 말하면, 어떤 식으로든지 내 감정 상태는 미묘하게 변화하고, 이전과 조금은 다른 상태가 된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아무렇지 않다는 것은 일종의 쇼크압쇼바(shock absorber)의 작동이 아닐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내 마음에 닿는 충격이 비교적 빠르게 완화되고 평정심을 얻은 상태.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은 아닌 상태. 조약돌이 내 마음에 떨어졌다가 이내 잔잔해진 상태를 우리는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아무렇지 않게 아무렇지 않다는 말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것 같다. 아무렇지 않지 않으면서. 아무렇지 않던데? 아무렇지 않더라. 아무렇지 않아. 같은 말을 쓴다. 살면서 아무렇지 않은 날이 별로 없었다. 좋든 나쁘든, 감정이 있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던 날을 되새겨 보면, 보통 우울함과 무기력함이 감정까지 잠식해서 무덤덤해진 상태거나, 아무렇지 않아야 해서 억지로 강한 척을 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애초에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게 사람이니까. 편의를 위해 우리의 상상으로 만든 단어이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다’는 말을 영어로는 옮길 수가 없는 것일 테다. 뱉기 전에 주춤해지는 말들이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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