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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an 27. 2021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별

상상할 수 없는

살면서 가장 의아한 일 중 하나는, 선한 사람의 이별을 바라볼 때다.      


어릴 때부터 나는 닮고 싶은 사람들을 끊임없이 흉내 내며 성장해왔다. 초등학교 때는 사촌 형이나, 교회 초등부 담당 선생님의 태도를 흉내 냈고, 중·고등학교 때는 절친한 친구나 학교 선배를, 대학교 때는 인터넷에 각종 연애 글을 연재하던 작가와, 매력 있는 대학 선배, 아르바이트 업장의 친구나 동생, 형, 누나들을 따라했다.


따라할 수 없는 것은 삶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나 선한 마음 같은 것들이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각별히 존경하는 버릇이 있다. 싸움을 잘하고, 힘이 세고, 기가 센 사람들 앞에서 나는 결코 주눅 들지 않는 존재지만, 주변을 감화시키는 미련할 정도로 착한 사람이나 매 시간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는 성실한 사람들 앞에서는 저절로 쪼그라 들었다. 배를 드러내 보이며 복종을 표하는 들개처럼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나는 한 마리의 순한 양이 되어 실실 웃기 바빴다. 유독 그런 면이 늘 부러웠다.     


내가 경애(敬愛)했던 선한 사람들은, 그냥 착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뭐랄까, 말하자면 로맨틱코미디 영화에 등장하는 ‘휴 그랜트’같은 사람이거나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로빈 윌리엄스’, <인턴>에 나오는 ‘로버트 드니로’같은 사람이었다.


<노팅 힐> 속 ‘휴 그랜트’는 어떤가. 선하고 멀끔한데 위트까지 있어서 도무지 부부싸움 같은 게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사람이다. 남자다운데 귀엽기까지 하다.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식으로 끝나는 <노팅힐>의 결말은 그래서 굉장히 납득이 간다. ‘휴 그랜트 같은 남자랑 사는데 싸우는 게 이상하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로빈 윌리엄스’는 어떤가. 카리스마 있고, 다정하다. 머릿속에는 오로지 올바른 것들만 가득할 것 같다. 불의에 굴하지 않을 것 같고, 아내와 자식에게 늘 고마워할 줄 알며 아버지로서의 본분을 언제나 다할 것 같다. 그가 호프집에서 친구들과 음담패설을 나눈다든가 아내에게 술주정하는 모습은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 멋지게 늙어 신사다움의 전형을 보여주는 <인턴>의 ‘로버트 드니로’도 얼마나 인자한가. 내가 존경했던 사람들은 영화 속 주인공 까지는 아니라도 비슷한 면모를 꽤나 가지고 있었다.     


아르바이트할 때 만난 C형은 보급형 예수 같은 사람이었다. 서비스직이었는데도 화 한 번을 내지 않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도 늘 친절했다. 친구하고는 사이좋게 잘 지냈고, 동생들에게는 농담도 건네면서 편하게 대해주었으며 실수에도 인상을 붉히는 일이 없었다. 위의 형들에게는 깍듯했다. 나중에는 근무 스케줄을 짜는 선임 스탭이 되었는데, 그때에도 남들 시간을 다 맞춰주느라 자기는 엉망진창 들쭉날쭉한 시간으로 일을 했다. ‘미련할 정도로 착한 형이네’ 나는 그 모습을 참 멋있어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멋있어지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해서 자주 자책을 했다.     


어느 날 그 형과 나란히 서서 일을 하는데, 서로의 가족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둘 다 위로 형이 한 명씩 있었다. 나는 문득 C형의 친형에 대해 무척 궁금해졌고, C형에게, ‘형의 형은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나온 대답이 너무 뜻밖이어서 나는 ‘우하하하’ 한참을 웃고야 말았다.     


“우리 형? 우리 형은 진짜 바보같이 착해.”     


미련할 정도로 착한 형이 자신의 형을 바보같이 착하다고 소개했을 때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형은 “야 웃지 마. 죽을래? 우리집에서 나 양아치야 어? 양아치라고.” 대답하며 무안해했다. 그 말마저도 웃겨서 숨이 넘어가게 웃었다.     


그 형은 잔잔하게 인기가 많았다. 아마 대부분의 여자들이 그 형에게 호감이상의 감정이 있었을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형은 그 중 나와 동갑인 한 여자애와 사귀게 됐는데, 둘은 정말 예쁘게 만났다. 누가 보아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커플이었다. 나는 그 둘이 헤어지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결혼을 할 줄 알았다. 내가 어리고 생각이 없어서 이른바 순진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고, 나름대로 세상 때를 타서 염세적인 세계관이 있었는데도 그러했다. 그런데 그 둘은 몇 년을 만나다가 결국 헤어졌다. 그 둘의 이별을 보면서 꽤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살면서 만났던 ‘로버트 드니로’ ‘로빈 윌리엄스’ ‘휴 그랜트’들은 모두 한 번 쯤은 이별을했다. 그게 너무 당연한데도 나는 늘 새롭게 신기했다. 그들도 싸우는 존재라는 것. 누군가에게 완전히 질려서 이별을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 도무지 실감나지 않을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성경에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가 있다. 강도를 만나 가진 것을 빼앗기고 상처 입은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 그걸 보고 그냥 지나가고, 사제도 그냥 지나가고, 레위인도 지나가는데 하찮은 신분이었던 이교도 사마리아인이 그를 돌봐주었다는 이야기다. 나는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선한 사람을 보면,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느껴진다. 그가 이교도 하층민이라는 게 아니라, 쉽사리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선행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는 것 같아서다. 그런데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싸우고, 서로에게 심한 말을 하고, 완전히 질려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마치 그 선한 사마리아인이 술을 잔뜩 먹고 노상방뇨를 하며 길거리를 활보하는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휴 그랜트는 실제로는 창녀와 성매매를 했고, 로빈 윌리엄스는 아이들의 보모와 바람나서 이혼을 했고, 로버트 드니로는 여비서에게 폭언 욕설을 했다는데. 사람을 잠깐 봐서는 당연히 모든 면을 알 수가 없는 것이겠지. 그들을 잠깐 보았기 때문에 실제보다 더 완전한 인간상으로 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한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선한 사람들의 이별이 신기하다. 도무지 이별할 수 없을 것처럼 선하고 인자한 사람들이 개인적인 갈등을 겪으며 살아간다는 것은 살면서 문득 참 신기한 일이다. 그들도 누군가와 싸우고, 짜증을 내고, 화를 낸다는 건 어쩐지 상상할 수 없는 장면 같다. 나는 마음 가는 대로 짜증내고 화내고 잘해줬다 못해줬다 하면서 타인에게는 곧잘 놀라고 실망하고 아쉬워하는 것이, 글로 쓰고 보니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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