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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Jan 24. 2021

좌측통행과 우측통행

오늘의 회상, 요즘의 사색

초등학교에 갓 입학하던 때를 생각해보면, 따뜻하고 평화로운 장면과 함께 혼란스러운 모습도 떠오른다.


밀레니엄 밀레니엄 하는 단어가 수시로 들렸고, 매체들은 다가올 세기에 세상이 뒤집어질 것처럼 들떠있었다. 민간에서는 사이비 종교들이 난리였다. 무엇보다도 IMF가 국가를 덮치고 있었으므로, 뉴스에서는 연일 암울한 이야기들만 흘러나왔다. 몇 년 전에는 8살짜리 아이들이 IKON의 ‘사랑을 했다’를 따라 부르는 게 유행이었는데, 내가 8살일 때는 한스밴드의 오락실 같은 노래를 아이들이 따라 불렀다. ‘용돈을 주셨어. 단 조건이 었어. 엄마에게 말하지 말랬어.’처럼 슬픈 가사를 아무것도 모르고 흥얼거린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에서는 받아쓰기보다 먼저 아나바다를 배웠다. 몽당연필이라는 단어가 그냥 연필보다 흔하게 들렸고, 연필이 짧아지면 당연히 모나미 볼펜 깍지를 끼워 써야하는 줄 알았다. 언제나 아껴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써야 한다고 했다. 서세원쇼, 이홍렬쇼 같은 토크쇼를 엄마 무릎에 앉아서 보았고, 뉴스에 나온 대통령은 내 눈에 그저 힘없는 할아버지처럼 보였다.     


학교 앞에서는 병아리를 팔았다. 한 마리 500원이었는데, 나도 몇 번이나 그 병아리를 샀던 기억이 난다. 놀라운 것은, 샀던 기억만 있고 그걸 어찌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다. 분명히 투명한 비닐봉지에 병아리를 싸서 집으로 가져왔는데, 어머니는 어쩐지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기억은 거기까지다. 그걸 버렸는지, 누구에게 주었는지 모르겠다. 잠시 병아리에게 애도를 표한다. 학교 앞에서는 ‘미끌이’라고 하는 장난감도 종종 샀었는데, 너무 미끄러워서 가지고 놀다보면 운동장 모래바닥에 꼭 떨어뜨리곤 했다. 한번 떨어뜨리는 순간 미끌이의 수명은 끝이었다. 작년에야 알게 되었는데, 미끌이는 콘돔으로 만든 거였다고 한다.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IMF와 아나바다의 시절. 운동복은 문방구에서 샀다. 우등생 체육복이라고 불리는 흰색 트레이닝 복이었는데, 내 생에 그렇게 편한 옷은 다시 없었던 것 같다. 로봇만화 운동화에 우등생 체육복을 입고 뛰어다니면 거칠 것이 없었다. 모든 아이들이 우등생 체육복을 입고 운동장에 줄 서서 아침조회를 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조금 이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즈음의 사회 분위기와 교육들은 내 내면에 지뢰처럼 박혀서, 아직도 나의 일부분을 단단하게 형성하고 있다. ‘돈’이 없어 얼마든지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을 IMF를 어린이로 겪었던 우리 세대는 진작부터 학습했다. 내 또래 친구들은 모두 IMF로 인한 트라우마(혹은 가벼운 강박)를 모두 조금씩은 가지고 있다.      


나는 법에 대한 신뢰도가 조금 낮은 편이다.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법이란 ‘지켜야 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기도 했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는데, 아마도 초등학교 입학 후 배웠던 좌측통행이 스무 살 무렵 우측통행으로 바뀌었던 것이 결정적이었다. ‘보행 시에는 좌측으로 걸어야 해!’ 하던 것이 하루아침에 ‘우측으로 걸어야 해!’로 바뀌었을 때. 나는 ‘뭐야. 좌든 우든 정하기 나름이잖아?’ 불만스러워 했다.   

   

오늘까지 옳던 게 내일부턴 그른 것이 되고, 오늘까지는 그르던 게 내일부터 옳은 것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나에게는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그때부터는 아무 때나 바뀔 수 있는 법 보다는, 나의 양심과 판단에 더 손을 들어주게 됐다. 차가 아무도 없는 도로에서는 무단횡단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사는 식이다. 산에서 술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쓰레기 잘 챙기고 주량이 아주 낮지만 않으면 정상에서 맥주 한 캔 정도는 괜찮다고도 생각한다. 시골 한적한 도로에 저 멀리부터 여기까지 차가 전혀 없어도 무단횡단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무섭게 느껴진다. 저 신념은 어디서 오는가 하고.  


좌측통행을 배운 8살의 나와, 우측통행을 하는 30살의 내가 전혀 다른 사람이듯이, 좌측통행의 시절에 배웠던 많은 것들이 적응하기 힘들 정도로 바뀌고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 중이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는 게 당연하던 세상에서 비혼이라든가, 딩크같은 말이 일상적으로 통용되고, 평생직장이라는 게 사라지는데...  한편 여전히 석유는 고갈되지 않고, 여전히 자동차는 하늘을 날지 않고, 곧 하나가 된다던 한반도는 여전히 초긴장상태에 놓여있다. 좌측통행인가. 우측통행인가. 어떤 면에서는 끊임없이 진보하고, 또 어느 쪽에서는 답보하는 채로. 좌측통행인지 우측통행인지 아득해지는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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