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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r 07. 2021

글 쓰는 사람은 징그러워

행함이 없는 공허한 말짓

검정치마의 노래, '음악하는 여자'를 좋아한다.

"나는 음악하는 여자는 징그러워. 시집이나 읽으며 뒹굴어 아가씨-"

이 가사가 도달하는 지점에서 나는 늘 노랫소리를 따라 흥얼거린다. '나는 음.악. 하는 여자는 징그러- 시.집. 이나. 읽으며 뒹굴어. 아가씨- '

검정치마가 음악 하는 여자 징그럽다고 하는 것과 달리, 나는 글 쓰는 사람이 징그럽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공허한 말로 글 쓰는 사람에 대한 징그러움에 가까울 것이다.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사람. 조금 실천하고 많이 생각하는 사람. 조금 베풀고 많이 반성하는 사람. 내가 아는 글 쓰는 사람은 늘 그런 식이다.

탁월하게 감각하는 재능이 있어서 자기 몸에 나는 생채기 하나에도 온갖 호들갑을 다 떨고, 집요하게 누군가를 미워하고, 쉽게 용서 못하고, 타인이 나에게 행한 야만을 서사시로 읊고, 비슷한 감정의 글을 보며 위안받고, 쓰고 또 쓰고...

글 쓰는 사람의 비참이란 그런 것이다.

자신의 취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타인의 취향에 쉽사리 조소하고, 쉽게 상처 받고 많이 아파하며 곧잘 우울해하고 과거에 연연하고 자신 속으로 끝없이 침잠해 들어가는가 싶다가 어느 새는 부처가 되고 잠깐씩은 예수가 되고. 그러다 어느샌가 저도 모르게 유다처럼 스스로를 배신해내고 마는 사람.

글 쓰는 사람은 반짝거리지만 쉽게 지루해하고, 예민하지만 어쩔 도리없이 촌스럽고. 게으르지만 합리화를 잘하고, 심심치 않게 말로 때우고, 앉아서 공상이나 하고, 실용성이라고는 없이 살면서 온갖 실용적인 도구들을 가까이하고, 정답이 없는 세계에서 살면서 정답 내리기를 좋아하고, 타인의 정답은 쉽게 오답 처리하며 쉽사리 산다.

그래서 나는 글 쓰는 사람이 징그럽다. 피아노나 치면서 뒹구는 사람들이 좋다. 말에 서툴고 손이 가벼운 사람들이 좋다. 악기를 연주하고, 그림을 그리고, 노동하는 손이 좋다. 글 쓰는 사람이 지긋지긋한 날이 자주 있다. 입만 살아서 둥둥 떠다니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래. 사실은 글 쓰는 다른 사람들 말고, 거울 속의 내 얘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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