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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Mar 10. 2021

쓸쓸하더라도, 모자람 없이 온전하게

오롯이

뚜렷한 이유 없이도 외로워지는 날이 있다. 누군가와 싸우지도, 집단에서 고립되지도 않았음에도. 모든 일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일상에서 느껴지는 외로움은 때때로 의문스럽다. 그런 밤이면 밥 먹고 나서도 괜히 입이 심심한 사람처럼, 하루 종일 사람을 만나고 소통했으면서도 허전함에 뒹굴고는 한다.


뚜렷한 이유없이 외로워지던 어떤 밤에, 나는 데이팅 어플을 설치해서 타인의 프로필 사진을 좌우로 휙휙 넘겨본 적이 있었다. 혼자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하기에도 바쁜 혼자만의 시간이었으나 사람으로만 채울 수 있는 외로움과 쓸쓸함의 감정이 몰려오는 날이었다.


곧 매칭을 알리는 강렬한 메세지가 표시되며 어떤 여자와 연결되었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멋있고 낭만적이기만 한 대화는 아니었다. 각자의 인상에 대한 이야기, 잠시간의 칭찬과, 궁금증을 주고받는 평범한 대화였다. 사진 상의 그녀는 너무 예뻐서 여러 사람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았다. 왜 나랑 대화를 하는 것인가 싶기도 했다. 그녀와는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누었다. 대화의 끄트머리에서는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그녀를 만난 날. 같이 저녁을 먹고, 2차로 맥주를 마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했다.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았지만, 생각만큼 크게 즐겁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만남은 어영부영 끝이 났다. 누군가를 만나면 피곤하고, 만나지 않으면 쓸쓸한 날들은 그 이후로도 여러 번 반복되었다.


외로움과 쓸쓸함을 동의어처럼 사용할 수는 없겠으나, 보통 쓸쓸할 때 외롭고, 외로울 때 쓸쓸했다. 그래서 어쩐지 나에게는 그 두 단어가 늘 비슷하게 들리곤 했다. 글을 쓰다가도 외로움의 자리에 쓸쓸함을 쓰거나, 쓸쓸함을 써야할 자리에 외로움을 사용했다. 일반적으로도 두 단어가 혼용되는 모양인지, 별 문제가 생기거나 하지는 않았다.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라는 노래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한 가지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일 참 쓸쓸한 일인 것 같아…”


사람을 사랑하는 순간 예외 없이 이별이 확정되고, 그 이별을 겪어나가는 일이 참 고되다는 감정은 절절하게 와닿았다. 사랑이 쓸쓸하다는 얘기였다. 차분하고 영롱한 멜로디때문인지 듣고 있으면 가사만큼이나 쓸쓸해지는 노래였다. 이 노랫말도 결국 사랑과 이별이 주는 외로움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니, 내가 느낀 혼동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외로움과 쓸쓸함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하게 해준 건 우연히 검색해 본 '오롯이'의 뜻 때문이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오롯이라는 단어동음이의어로 각기 다른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는 ‘모자람이 없이 온전하게’라는 뜻이고, 두 번째는 ‘고요하고 쓸쓸하게’라는 뜻이었다. 나는 이 두 가지 뜻이 하나의 소리에 담겨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내가 느낀 쓸쓸함은 무엇인가가 모자라서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고요하고 쓸쓸한 상태는 어딘가 외롭고 평범하지 않은 상태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사전은 모자람이 없이 온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쓸쓸함이 있다고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 쓸쓸하더라도 모자람이 없이 온전한 상태일 수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이제 나는 뚜렷한 이유없이 쓸쓸해지는 어떤 밤에, 모자람 없이 온전한 마음으로 시간을 음미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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