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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댐 Dec 10. 2021

저는 공을 일자로 못 차요

축구를 회피한 삶

남자분들이 들으면 조금 놀라시겠지만, 나는 평생 11대11로 하는 모든 축구 경기에서 단 한 골도 넣어본 적이 없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한 골 정도는... 하겠지만 정말로 한 골도 넣어본 적이 없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하는 공놀이나, 풋살 정도라면 몰라도, 인원수를 맞춰서 하는 경기에서는 한 골도 못 넣었다. 아마 앞으로 죽을 때까지 사람 수를 맞춰서 정식으로 하는 축구 경기를 해볼 일은 없을 것 같은데 (일단 내가 별로 할 마음이 없으므로) 그렇게 생각하면 나는 삶이 다할 때까지 공식경기 0골이라는 기록으로 살아가야 하는 셈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군대에서 후임들한테 접대 어시스트라도 받았어야 하는건데 안일했다.


근데 이런 얘기를 하면 사람들은 꽤나 놀란다. 왜냐하면... 내가 겉으로 보기에는 운동을 아주 잘해보이기 때문이다. 176cm의 키에, 어깨가 넓고, 군살이 없으며, 적당히 근육질인데다가, 피부도 까무잡잡해서 모르는 사람들은 주말마다 이런저런 운동을 열심히 다니는 사람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고는 한다.


군대에서도 그랬다. 처음 자대배치를 받았을 때, 선임들은 나를 보면서 인재가 들어왔다며 기뻐했다. "축구 잘하냐?" 하고 묻는 말에 "축구 되게 못합니다"하고 대답했더니, 역시 실력자는 겸손한 법이라며. 칭찬까지 해주었다. 그리고 다가온 주말, 전투축구시간에 나는 동기들보다 한참이나 먼저 뽑히기까지 해서 미드필더로 뛰게 되다. 부족한 실력이지만 나름 열심히 뛰었는데, 경기가 끝나자마자 선임들에게 둘러싸여 혼났다. 못하는 것도 서러운데 혼나기까지 하니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없었던 건, 나의 죄목이 단순히 '축구 못함'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갈구는 내용을 듣고 있자니 '축구 못함'보다 더 큰 죄목은 '기만'이었다. 나는 잘한다고 한 적도 없고, 줄곧 솔직하게 축구 못한다고 했는데 왜 기만인지.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아무튼 '축구 잘하게 생겼으면서 드럽게 못했기 때문에' 열심히 혼났고, 그 후로 몇 번의 검증을 더 통과한 후에 전역때까지 축구와는 자의로 타의로 거리를 두게 되었다. 아, 딱 한 번 정도는 중요한 경기에 나간 적이 있었다.


거의 전역 직전이었는데, 부대 내에서 굉장히 중요한 축구대회가 열렸다. 대대 내의 모든 소대가 참여하는 토너먼트였다. 포상휴가도 많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당연히 내가 나갈일은 없었지만, 그런 일이 생기고야 말았다. GOP에 있다가 교대를 받고 내륙으로 돌아온지 얼마 안된 시기여서, 소대 내 대다수의 인원들이 밀린 휴가를 나갔던 것이다. 경기는 나가야하는데 인원수는 없고. 포상휴가가 절실했던 후임들은 진심으로 난처해했다. 자기들끼리 전술을 짜는 동안 줄곧 내 쪽을 힐끗힐끗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다 한 녀석이 쭈뼛쭈뼛 내 자리로 와서는 어렵게 입을 뗐다.


"서댐 병장님...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 다름이 아니라... 병장님께서 축구를 나가셔야 할 것 같습니다."


문제는 문제였다. 소대 최고참인 내가 축구를 싫어하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던 사실이었기에. 출전해달라고 부탁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 너희 맘이 이해가 간다.' 나도 후임인 적이 있었으니까. 자상한 나는 후임들의 마음이 좀 편해지도록, 나름 따뜻한 목소리로 대답하기로 했다.


"그게 뭐가 문제야. 사람이 없으면 나라도 나가는 게 맞지. 나갈게. 아무거나 시켜줘."


대답을 들은 후임은 자리로 돌아가서 에이포 용지에 다시 포메이션을 짜기 시작했는데, 슬쩍 가보니 후임들의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선임에게 축구 출전을 부탁하는게 어려웠던 것이 아니고, 내가 축구에 참여하는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무얼 하면 되냐고 물었더니 후임들은 대답을 망설이며 무슨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를 풀듯이 종이에다가 이름을 계속 지웠다 썼다를 반복하기만 했다.


서댐 병장님은... 그... 수비는... 진짜 중요해서 일단 하시면 안될 것 같고... 미드필더...는 진짜 중요해서 안될 것 같고... 그 공격수...도 중요하긴 한데... 음.... 그 차라리 사이드 백...을.. 아니... 그 레프트윙...은 많이 뛰어야 되고...


100분 토론을 방불케하는 논의 끝에 결국 나는 공격수를 하기로 했다. 서로 한 골도 못 넣으면 비길수라도 있지만, 수비를 맡겼다간 필시 질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최대한 비겨서 승부차기를 노리자는 전략. "원톱에 한얼이가 서고, 서댐 병장님은 오른쪽에서 쉐도우 스트라이커하시면 됩니다." 포지션은 그렇게 정해졌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병장님은 '혹시' 공을 받으시면 딱 5미터만 드리블해서 슈팅 때리시면 됩니다."

나에게 주어진 개인전술은 딱 한 줄이었다. '혹시'라는 말이 좀 걸리긴 했지만,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에 넘어갔다. '혹시' 공을 받으면 5미터 드리블 후 슈팅... 혹시 공을 받으면 5미터 드리블 후 슈팅... 내게 주어진 임무를 가볍게 중얼거려 보았다.


야심차게 준비한 경기는 어영부영 졌다. 아깝게 진것도 아니고 꽤나 큰 격차로, 한 네골 정도를 먹히며 졌다. 나에게 '혹시' 공이 오는 일은 없었다. 무슨 숙제를 해치운 듯 가벼운 마음으로 소대로 돌아오면서, 괜히 나 어땠냐고. 후임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더니


"최고의 쉐도우(Shadow)셨습니다. 경기 내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며 웃었다.


전역 이후로 누군가가 "축구 잘하실 것 같아요"하고 얘기하면 "저는 공을 일자로 못 차요" 하고 대답한다. 모두가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공을 보낼 때, 나는 공의 자율성을 존중한다고. 공이 가고싶은 곳으로 자유롭게 갈 수 있도록 한다고 대답한다. 반응은 보통 "그게 무슨 개소리야."다.


사람들은 너무 이기적이다. 왜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공을 보내려 할까. 공도 자기가 원하는 방향이 있을텐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나는 축구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공에 대한 배려심이 너무 많은 것일지도 모른다.


축구를 못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살면서 축구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축구 한 번 하려면 사람도 모아야 하고, 축구장도 빌려야 하고, 날씨도 고려해야 하고,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다. 그에 비해 노래방 가기는 이렇게나 쉬운 세상이니. 정말이지 브라질이나 잉글랜드에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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